• 5 Stories

미얀마 '로힝야족'

오랜 군부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뤄낸 국가, 미얀마. 보통 미얀마를 떠올리면 우리 머릿속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 산 수 치’ 여사부터 떠오르곤 하죠. 이 글을 읽은 이후부터 여러분은 ‘미얀마’ 하면 ‘로힝야족’을 떠올리게 될 겁니다.

미얀마 토착민들로부터 100년 넘게 박해를 받아오고 있는 로힝야족. 미얀마 정부의 인권 탄압과 더불어 최근에는 선박을 타고 미얀마를 탈출하는 이들이 늘어나 선상 난민(보트피플) 문제도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르는 중입니다.

by European Commission DG ECHO, flickr (CC BY)

‘보트피플’이 되어버린 로힝야족

박해를 견디다 못한 로힝야족은 스스로 ‘보트피플’이 되기도 합니다. 보트피플은 배를 타고 자기 나라를 떠나 머물러 살 곳을 찾는 해상 난민인데요. 문제는 이들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바다를 정처 없이 계속 유랑한다는 데 있습니다.

보트피플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들이 육지에 도착한다 해도 곧 인신매매 조직의 손에 들어가는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인신매매 조직은 로힝야족을 상대로 처음에는 1인당 90~370달러의 비교적 적은 돈을 받고 밀입국 배에 태워줍니다. 그러나 배가 상륙한 뒤에 인신매매범들은 난민 가족에게 연락해 이들을 납치하고 있으니 몸값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돈을 내지 못할 경우엔 난민들을 가둬둡니다. 제대로 된 생계 유지 수단도 제공하지 않고 이들을 마냥 가둬두기만 하니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난민이 사망합니다.

인신매매 단속을 강화하면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속이 강화되자 인신매매범들은 로힝야족이 탄 난민선을 버리고 탈출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로힝야족 보트피플의 규모만 수천 명입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남은 식량을 두고 배 안에서 싸움이 벌어져 100명 이상이 살해됐다는 증언도 전해집니다.

로힝야족 보트피플의 비극은 언제 끝날까요?

영국 식민 시대부터 이어진 미얀마 민족 갈등

로힝야족은 1960년대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군부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아온 미얀마 소수민족 중 하나입니다. 로힝야족이 군부에 의해 박해받고 미운털이 박혀 지금까지 고통받는 이유는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을 자기네 민족의 일부로 여기지 않고, 인도에서 들어온 무슬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로힝야족은 자신들이 9세기경 미얀마에 정착한 아랍 상인의 후손들이며, 비교적 최근 미얀마 지역으로 유입된 타민족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미얀마에 머물렀던 민족 집단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상합니다. 미얀마 군부는 왜 인도 무슬림을 탄압한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 지배한 18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야 합니다.

1885년, 영국은 미얀마를 식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 지배하며 가장 중요시한 것은 대규모 경작지 수탈을 통한 식량 확보였습니다. 당시 수탈 규모가 매우 컸으므로 미얀마 토착민들의 노동력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는데요. 이에 따라 영국은 미얀마 근처에 있는 인도 무슬림들을 미얀마로 이주시킵니다. 외부에서 노동력을 공급한 셈이죠.

아시다시피 미얀마는 전 국민의 90%가 불교신자인 불교 중심 국가입니다. 미얀마로 들어온 인도 무슬림들은 미얀마 토착민과 서로 다른 문화로 인한 갈등을 겪습니다. 이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은 1차 대전 이후인데요. ‘쳇뜨야(Chettuar)’라 불리는 인도인들은 미얀마에 들어와 고리대금업을 주 수익원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합니다. 1차 대전 이후 가혹한 수탈로 가난을 면치 못했던 미얀마 토착민들이 쳇뜨야들에게 빌린 돈을 변상하지 못해 지니고 있던 토지 소유권을 상실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또한, 영국인들이 인도계 무슬림을 미얀마 군·관·경제 분야에 ‘준지배계층’으로 등용하면서 미얀마 토착민들의 불만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1920년대 이후, 불만이 쌓이고 쌓여 미얀마 토착민들 사이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민족주의 운동은 불교와 무슬림 간의 종교 갈등으로 번졌는데요. 인도 무슬림은 물론이거니와 기존 미얀마 토착 사회에 잘 어울리고 있던 토착 미얀마 무슬림들까지도 미얀마 토착민들의 미움을 받기 시작합니다.

"왜 나만 갖고 그래?” 로힝야족의 눈물

2차 대전이 끝난 시점인 1948년 1월 3일, 미얀마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합니다. 1962년 미얀마에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네윈 정권이 들어서는데요. 이들은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미얀마 토착민 버마족과 불교도 위주의 정책을 펼칩니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쌓였던 억압과 불만이 쿠데타 이후 타민족과 종교에 대한 배척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죠.

네윈의 군부 정권은 자신들이 ‘오래전부터 미얀마에 정착한 민족 집단’이라는 로힝야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영국 식민지 당시 방글라데시로부터 넘어온 불법 이민자로 규정합니다. 군부는 로힝야족을 포함하여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모든 무슬림을 불법 이민자로 규정했으며, 이들을 소수민족으로도 인정하지 않는 정책을 시행합니다.

“오늘날 미얀마에는 135개의 민족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른바 로힝야족은 그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 1824년 제1차 영국-미얀마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인접 국가로부터 무슬림들이 미얀마로 특히, 라카인주에 불법 이주해왔다. 불법이주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영주권을 가질 수 없다.”

미얀마 외무부 장관 우 옹 조(U Ohn Gyaw), 1992년 로힝야족 관련 기자회견 중

이후 로힝야족은 온갖 박해를 받기 시작합니다. 군부 정권은 이들에게 불교 개종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 토지를 몰수하고, 거주지를 제한하고, 강제 노동을 시키는 등 폭정을 일삼습니다. 1974년에는 로힝야족에게 외국인 등록증을 부과하는 비상이민법, 1977년에는 불법 이민자를 색출하는 나가밍 프로그램이 시행되며 1978년 약 20만 명의 로힝야족이 미얀마에서 쫓겨나기에 이릅니다.

탄압을 피해 제 발로 미얀마를 탈출해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주변 국가로 가는 로힝야족의 수도 증가합니다. ‘보트피플’이라 불리는 이들은 보통 선박을 이용해 탈출을 시도하는데요. 배를 타고 가던 중 좌초나 전복 등의 사고가 발생해 많은 로힝야족이 목숨을 잃었으며, 지금까지도 이러한 사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네윈 정권은 1982년 시민권법 개정을 통해 로힝야족이 가지고 있던 미얀마 국적 또한 박탈해버립니다. 로힝야족은 완벽하게 국적을 잃은 신세가 된 것이죠.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2010년 미얀마에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토착민들의 반감은 더욱 커집니다. 미얀마 민주화 지도자인 아웅 산 수 치 여사 또한 로힝야족에 대한 언급을 꺼릴 정도인데요. 로힝야족을 옹호했다간 미얀마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얀마 토착민에게 미움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죠.

끝나지 않은 박해, 고통받는 로힝야족

현대 미얀마에도 종교 갈등은 여전합니다. 불교와 이슬람교는 끊임없이 유혈충돌을 빚고 있고, 그 중심에는 로힝야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라카인주 비상사태’입니다. 2012년 6월, 로힝야족의 주 거주지인 리카인주에서 무슬림 남성 3명이 불교도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불교도의 이슬람 집단 공격으로 이어졌는데요. 이로 인해 무려 200여 명의 로힝야족이 숨지고, 10~14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에 미얀마 정부는 라카인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불교도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에 로힝야족 일부 주민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방글라데시 국경지대로 몰려가거나 보트를 타고 바다로 탈출하게 됩니다.

탈출로 박해가 끝나진 않습니다. 방글라데시 역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데, 국경 지대에는 이미 20만 명이나 되는 난민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방글라데시 정부는 난민 유입을 철저히 봉쇄하고 UN과 구호단체의 활동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방글라데시 국경수비대는 보트로 탈출한 로힝야족을 다시 보트로 밀어넣었고, 이들은 바다를 정처 없이 유랑하는 보트피플 신세가 되고 맙니다.

미얀마 정부는 뭘 하나?

“(로힝야족 문제의 해법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운영하는 난민캠프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만약에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로 보내 버릴 수도 있다”

2012년,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

미얀마 정부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로드맵’ 등을 통해 로힝야족 문제를 해결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로힝야족 탄압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불법 이주민으로 보고, 국적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다만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48년 이전부터 미얀마에서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겨우 벵갈리(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이주자)란 시민권을 부여합니다. 문제는 로힝야족에겐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이 정책은 사실상 로힝야 추방 정책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듭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 개인에게 이동의 자유를 제한합니다. 정부가 마련한 캠프에서 벗어날 경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로힝야족의 증가를 막겠다며 아이를 2명 이상 낳지 못하게 하는 산아제한 정책, 불교도와 무슬림의 결혼을 제한하는 정책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얀마 내에서 로힝야족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소극적입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 산 수 치 여사도 로힝야 문제에 대해선 ‘법치로 해결’한다는 수준의 목소리밖에 내지 않고 있습니다.

‘보트피플’이 되어버린 로힝야족

박해를 견디다 못한 로힝야족은 스스로 ‘보트피플’이 되기도 합니다. 보트피플은 배를 타고 자기 나라를 떠나 머물러 살 곳을 찾는 해상 난민인데요. 문제는 이들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바다를 정처 없이 계속 유랑한다는 데 있습니다.

보트피플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들이 육지에 도착한다 해도 곧 인신매매 조직의 손에 들어가는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인신매매 조직은 로힝야족을 상대로 처음에는 1인당 90~370달러의 비교적 적은 돈을 받고 밀입국 배에 태워줍니다. 그러나 배가 상륙한 뒤에 인신매매범들은 난민 가족에게 연락해 이들을 납치하고 있으니 몸값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돈을 내지 못할 경우엔 난민들을 가둬둡니다. 제대로 된 생계 유지 수단도 제공하지 않고 이들을 마냥 가둬두기만 하니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난민이 사망합니다.

인신매매 단속을 강화하면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속이 강화되자 인신매매범들은 로힝야족이 탄 난민선을 버리고 탈출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로힝야족 보트피플의 규모만 수천 명입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남은 식량을 두고 배 안에서 싸움이 벌어져 100명 이상이 살해됐다는 증언도 전해집니다.

로힝야족 보트피플의 비극은 언제 끝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