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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 논란

‘통보’라는 단어가 ‘요구’로 수정·변경되고, 요구 사항에 대한 '처리 계획’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처리한 후’ 보고한다고 바뀌었을 뿐인데... 당청 갈등에 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by Republic of Korea flickr (CC BY)

결국, 부결된 국회법 개정안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재의를 진행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정족수 미달로 부결됐습니다. 애초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표결 불참 방침을 밝히면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 부결은 예상된 결과였습니다.

​표결이 있기 전,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결 참여를 압박했습니다.


"여야 합의로 통과한 법안이다. 만약 최후의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그 결과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 표결이 진행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부분 자리에 앉은 채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새누리당의 표결 거부 의사가 명확해지자 정 의장은 오후 4시 35분에 투표를 종결시키고, 국회법 개정안 재의 부결을 선포했습니다.

"헌법 제53조 제4항에 따라 재의가 요구된 법률안을 의결하려면 우선 재적 의원 과반수인 150인 이상 의원이 투표해야 한다. 그러나 (투표에 참가한 의원이) 128인에 그쳐서 재적의원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제가 상식적으로 판단컨대 더 이상 기다려도 재적의원 과반수를 충족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의결에 필요한 재적의원 과반수에 미달하기 때문에 국회법 개정안 재의의 건은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

정의화 국회의장


​이에 따라 당청 갈등, 위헌 논란 등 수 많은 논란을 남겼던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 계류되며, 내년 5월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으로 폐기됩니다.

국회법 개정안, 일단 뭔지나 알고 갑시다

'뜨거운 감자’인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을 알아보기에 앞서, '국회법 개정안’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가야겠죠?

국회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법률과 시행령, 시행규칙 등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헌법은 ‘법률이 위임하는 범위 내’에서 행정부가 시행령(대통령령)과 시행규칙(총리령, 부령) 등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시행령, 시행규칙 등이 존재하는 이유는 법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절차와 내용을 법안에 모두 명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회가 법안을 통해 큰 틀을 만들어놓으면, 행정부가 시행령 등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갈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 넣는 것이죠.

문제는 법률과 시행령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발생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우리는 법의 5단계(헌법 - 법률 - 명령 - 조례 - 규칙)를 열심히 암기했습니다. 이 법의 5단계에는 상위법이 하위법에 우선한다는 대원칙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시행령을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내놓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법률의 취지를 거스르는 명령이 나오더라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죠. 눈치가 보인달까요?

이런 상황에서 나온 국회법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이 법률 취지·내용에 부합하지 않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령·총리령·부령이 법률 취지·내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국회법 제98조의2 3항

입법부는 ‘통보’를 할 수 있으며, 통보를 받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합니다. 어찌 됐건 입법부가 대통령령 등의 수정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통보’라는 단어 사용을 미루어봤을 때 그 압박 강도가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지난달 29일 여야 합의하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 내용을 살펴볼까요.

"대통령령·총리령·부령이 법률 취지·내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구 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개정 국회법 제98조의2 3항

‘통보’라는 단어가 ‘요구’로 바뀌었고, 수정·변경 요구 사항에 대한 '처리 계획’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처리한 후’ 보고한다는 점에서 기존 국회법과 차이가 있습니다. 입법부가 행정부에 “일단 우리 요구대로 처리해!”라고 말하는 투죠.

이 작은 뉘앙스의 차이, 그 차이로부터 현재의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논란, 그 시작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계기는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때문입니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특별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는 정부 시행령안을 시행하고자 했습니다. 이 시행령안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주도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세월호 유족 연합체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이하 4·16 가족협의회) 그리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강한 반발을 불러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이 모법인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와 목적을 훼손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퀘어 ‘세월호 특별법’ 이슈를 참고해주세요!)]

당시 여야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합의'를 목전에 두고 막판 진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때 "공무원연금법 처리를 하고 싶다면 세월호법 시행령 수정을 약속하라!”는 조건을 새누리당 측에 제시했습니다. ​​

새누리당은 이 조건을 받아 새정치민주연합 측에 “국회법을 개정하면 세월호법 시행령을 우회 개정할 수 있으니, 일단 국회법을 개정하는게 어떻겠냐?”는 역제안을 내놓습니다. 국회가 상위법 취지를 거스르는 시행령 내용을 강제로 바꿀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하면 이후 세월호법 시행령도 국회가 원하는 대로 내용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입법부인 국회는 대통령 시행령이 상위법인 법률의 취지와 목적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많은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정부의 행정입법이 상위 법령인 법률을 훼손하는 이른바 법령의 ‘하극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 사건은 쌓이고 쌓인 국회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어쨌든 간에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도 국회법 개정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을 겁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기서 한번 더 튕깁니다. 해양수산부를 관할하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이후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을 논의할 때 이를 ‘의결'해줄 것을 새누리당 측에 요구한 것인데요. 개정된 국회법을 통해 시행령을 수정하고자 할 경우 해당 상임위원회의 ‘의결’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이러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국회법 개정안은 지난달 29일 재석 의원 244명 중 211명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너 위헌!!!" 국회법 개정안에 열받은 청와대

지난 29일,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청와대는 발끈했습니다. 긴 말할 것 없이 청와대의 입장을 들어보죠.​

"정치권에서 행정입법의 내용을 입법부가 직접 심사하고 변경까지 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한 것은, 법원의 심사권과 행정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상의 권력 분립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 브리핑, 지난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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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도 이번 국회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는데요. 만약 국회법 개정안을 그대로 정부에 이송할 경우 거부권을 시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번 공무원연금법안 처리 과정에서 공무원연금과 관계없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문제를 연계시켜서 위헌 논란을 가져오는 국회법까지 개정했는데 이것은 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서 걱정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 지난 1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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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국회법 개정안이 사법부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 둘째는 행정부의 고유 권한인 행정입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인데요.​​

이에 대해 국회 사무처는 지난 1일 '국회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관련 검토 자료’를 발표해 청와대와 여당이 주장하는 '국회법 개정안 위헌’을 반박했습니다.​​국회 사무처는 국회법 개정안이 사법부의 행정입법 통제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행정입법에 대한 사법부의 통제는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 위법한 행정입법의 효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는 것과 대법원의 심사권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입법부가 행정입법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하고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후 사법부가 행정입법에 대한 위법 여부를 판단할 기회가 충분하므로 사법부가 권한을 침해당한다고 보긴 힘들다는 것이죠.​​

행정부의 고유 권한인 행정입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청와대의 견해에 대해서는 “국회 상임위원회가 행정입법 수정·변경을 요구하기 전 정부, 여당, 야당의 입장을 충분히 수용하고 합의 과정을 거칠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변경 요구 권한이 남용될 소지는 적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국회 사무처는 이번 국회법 개정 목적은 국회가 부당하게 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침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행정입법이 모법인 법률이 위임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입법부에 합리적인 권한을 주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Dr. 국회의장 : "갈등 봉합하러 왔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는 여전히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법 개정안 정부 송부 날짜를 15일로 미루고 최종 조율에 힘쓰고 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킥으로 내놓은 '조율 비법’은 이른바 '정의화 중재안’입니다. 이 중재안은 기존 국회법 개정안 안에 담긴 국회의 시행령 수정권한의 강제성을 다소 완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기존 국회법 개정안에 담긴 '국회 상임위가 소관 정부부처의 기관장에게 대통령령(시행령) 등을 수정·변경토록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에서 ‘요구’라는 단어를 ‘요청’으로 바꿨으며, '기관장은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는 조항 중 ‘처리하고’‘검토해 처리하고’라 바꾼 것이 주요 변경 내용입니다.

중재안이 발표된 직후 새누리당은 중재안 발표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중재안 발표 직후 중재안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지만 정 의장의 적극적인 중재로 조금 누그러진 모양새입니다. 다만, 새정치민주연합 내에 개정안 고수를 주장하는 강경파들이 존재해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5일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중재안 수용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방침입니다.

이 같은 '정의화 중재안’ 등판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감감무소식입니다. “오기만 해봐라!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할테다!”라는 태도인데요. 여야가 국회법 개정안에 "강제성이 없다"는 합의를 내놓지 않으면 개정안이건 중재안이건 간에 청와대는 이를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여야가 그동안 국회법 개정안에 쏟아온 공은 모두 허사가 되어버리기에 여야 또한 신중한 모습을 보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국회법 개정안 처리로 인해 청와대와 새누리당 사이에 냉각 기류가 흐르고 있는 만큼 새누리당 지도부 측은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이미 일은 다 벌여놓았지만...)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한 글자 고쳤다는 청와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확실시

지난 15일 오후,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법 개정안 중재안을 정부로 이송했습니다. 정 의장은 중재안 이송에 서명하기 전 새누리당 유승민,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회동을 하고 중재안 세부 내용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 원내대표의 요청에 따라 기존 정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이 수정되었는데요. 이 원내대표는 정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 문구 중 ‘요구’라는 단어가 ‘요청’으로 수정된 것은 인정하나, "해당 부처가 이를 처리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한다"는 내용 중 ‘처리하고’를 ‘검토해 처리한다’로 바꾼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정 의장 또한 이 원내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재안 내용은 ‘요구’라는 단어가 ‘요청’이라고 바뀌는 선에서 확정되었습니다.

정 의장은 중재안의 정부 이송 전 중재안으로 인해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소지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위헌 소지가 없어졌으니,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도 없다’고 넌지시 이야기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단호하게 정 의장의 희망고문을 내쳐버렸습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오전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중재안을 보니 한 글자를 고쳤던데 우리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지금으로써는 거부권 행사 시기 등은 결정된 바 없고 다른 대응책도 준비된 바 없다. 저희 입장이 바뀐 바 없다”고 이야기했는데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시기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박 대통령은 오는 30일 이전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큽니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 이송 후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부권이 행사되었습니다. 국회로 돌아가시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번 정부 들어 처음 있는 일이며, 헌정 사상 73번째입니다.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해당 법률안은 국회로 돌려보내지며 국회는 재의를 진행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꽤 강한 어조로 여야의 국회법 개정안 정부 이송을 비판했습니다. 다음은 대통령의 주요 발언입니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 문제는 헌법의 문제이자 우리 미래가 달린 정치와 국정의 기본질서에 관한 문제로 당장의 정치적 편의에 따라 정부가 따라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부를 도와줄 수 있는 여당에서조차 그것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권을 침해하고 정부의 행정을 국회가 일일이 간섭하겠다는 것으로, 역대 정부에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안입니다."

"개인이 살아남기 위한 정치를 거두고 국민을 위해 살고 노력하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 상생의 정치에 국민들을 이용하고 현혹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박 대통령의 비난 공세는 여야할 것 없었는데요. 오히려 그 강도와 빈도로 따지면 여당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와대와 합심해도 모자랄 판에 훼방을 놓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가 발언에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사태를 악화시킨 당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이번 국회법 개정안 사태를 당 내부에서 주도한 유승민 원내대표에 사퇴 여론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있고, 사태를 주도한 여야의 대응은 180도 달랐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고 밝혔으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야당에 대한 거부이자 여당에 대한 거부, 국회에 대한 거부 나아가선 국민에 대한 거부”라며 거부권을 행사한 박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도 진심으로 죄송하다" 꼬리 내린 유승민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습니다.

​가장 큰 내홍을 겪고 있는 곳은 새누리당입니다. 이번 당정 갈등의 주도자로 몰린 유승민 원내대표의 신임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새누리당 의원들은 의원 총회를 열어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하기로 했지만, 이장우, 윤상현 의원 등 이른바 친박계 의원들이 재신임 결정에 강한 반발을 하고 나섰습니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탈당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결국 거부권 행사 다음 날인 26일 ‘배신’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자신을 나무랐던 박 대통령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사실상의 백기 투항인데요. 박 대통령의 초강수가 먹혀든 것이죠.

"우리 박근혜 대통령께도 진심으로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시는데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저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올린다. 박 대통령께도 거듭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 박 대통령께서도 저희들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길 기대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문재인 당 대표가 직접 발표한 호소문에는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이외에도 정부와 새누리당의 무능을 질책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대통령의 국회법 거부권 행사는 정부무능에 대한 책임면피용이자, 국민적 질타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치졸한 정치이벤트에 불과합니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책임도 큽니다. 새누리당의 국회법 개정안 자동폐기 추진은 자신들의 결정을 스스로 뒤집는 자기배반이자, 청와대 굴복선언입니다. 여야 합의사항을 뒤엎으면서 국회의 존재가치를 부정하고, 대통령의 뜻에만 따르겠다면, 삼권분립과 의회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이 와중에 정의화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개정안 재의에 대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정 의장은 다음 달 1일 국회 본회의에 국회법 개정안을 상정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새누리당 측이 “재의는 불가능하다”는 당론을 앞세워 ​국회법 개정안 의결 순서에 본회의장을 비울 것으로 알려져 국회법 개정안은 정족수 부족으로 자동 폐기될 확률이 높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재의, 오는 6일 본회의서 진행

30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다음 달 1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를 닷새 미룬 6일에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 의장은 발표문을 통해 본회의 연기와 국회법 개정안 재의에 관해 이야기했는데요. 6일 있을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 건이 우선 처리될 예정입니다.

​애초 정 의장은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의사일정 협의를 요구했는데요. 하지만 여야 원내대표가 협상에 응하지 않자 결국 정 의장은 국회의장 직권으로 의사일정을 결정했습니다. 국회법 76조 3항에 따르면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의사일정이 합의되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이 직접 일정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야기된 것과 같이 새누리당은 오는 6일 본회의에는 참여할 예정입니다. 다만 국회법 개정안 재의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을 예정인데요.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의 표결 참여를 압박하고 나섰으나 새누리당의 표결 불참 입장이 확고해 국회법 개정안 자동폐기는 불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결국, 부결된 국회법 개정안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재의를 진행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정족수 미달로 부결됐습니다. 애초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표결 불참 방침을 밝히면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 부결은 예상된 결과였습니다.

​표결이 있기 전,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결 참여를 압박했습니다.


"여야 합의로 통과한 법안이다. 만약 최후의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그 결과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 표결이 진행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부분 자리에 앉은 채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새누리당의 표결 거부 의사가 명확해지자 정 의장은 오후 4시 35분에 투표를 종결시키고, 국회법 개정안 재의 부결을 선포했습니다.

"헌법 제53조 제4항에 따라 재의가 요구된 법률안을 의결하려면 우선 재적 의원 과반수인 150인 이상 의원이 투표해야 한다. 그러나 (투표에 참가한 의원이) 128인에 그쳐서 재적의원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제가 상식적으로 판단컨대 더 이상 기다려도 재적의원 과반수를 충족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의결에 필요한 재적의원 과반수에 미달하기 때문에 국회법 개정안 재의의 건은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

정의화 국회의장


​이에 따라 당청 갈등, 위헌 논란 등 수 많은 논란을 남겼던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 계류되며, 내년 5월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으로 폐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