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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난민 유입

지중해,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를 잇는 항상 따뜻하고 햇볕이 따가울 것 같은 그 바다가 난민들에게 '죽음의 바다'로 변해버렸습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총 2만2천 명의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다 익사했습니다.

European Council, flickr (CC BY)

난민 통제로 돌아선 갈대 같은 EU

지난해 유럽연합(EU) 국가들로 유입된 난민은 약 120만 명입니다. 새해에도 난민 유입 추세는 줄지 않아 연초 이후 9주간 13만 명의 난민이 새롭게 유럽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례없는 난민 유입으로 유럽 전역이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끙끙거리며 앓고 있는 국가는 그리스와 터키입니다.

그리스는 지중해 연안에 있어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국가입니다. 더블린 규약에 따르면 난민이 처음 발을 들여놓은 EU 회원국이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해야 하므로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밀려드는 난민을 속수무책으로 수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독일이 더블린 규약을 유보하고 ‘시리아 출신 난민에 대한 무조건 수용’을 선언하면서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 국가의 숨통이 조금 트이는듯 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2015년에만 약 8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인 독일이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난민을 실질적으로 수용하고 관리하는 지자체의 불만이 높아졌고, 크고 작은 난민 관련 범죄가 발생하면서 여론은 악화됐습니다. 독일 정부는 결국 난민 수용책을 포기하고 난민 유입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마케도니아 이북의 동유럽 발칸 국가들이 난민의 이동을 막으면서 이른바 발칸 루트가 차단됐습니다.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들은 꼼짝없이 그리스에 갇히게 됐죠. 그리스에 발이 묶인 난민만 약 3만 명이고, 이달 말까지 10만 명의 난민이 더 도착할 전망입니다. EU는 그리스와 인근 발칸 국가의 난민 수용 능력 확충을 위해 약 9천억 원의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리스와 발칸 국가들은 난민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터키 쪽도 문제입니다. 그동안 시리아 난민들이 터키를 거쳐 EU 국가로 들어가는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 EU 국가의 국경 통제가 심해지면서 난민들이 발이 터키에 묶였습니다. 현재 터키 내에는 시리아 난민 200만 명이 들어와 있는데요. EU는 터키에 머무르는 난민들의 유럽행을 저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방안을 마련하기까지 결국 터키가 난민들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죠. EU는 성난 터키 정부를 달래기 위해 재정 지원, 터키의 EU 가입 논의 등을 재개했습니다.

​이 상황만 보더라도 EU가 난민 위기 대응에 점차 강경하게 나서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지난 7일, 브뤼셀에서 열린 EU-터키 정상회담에서 EU 정상들과 터키 총리는 “너무 많은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들고 있고, 대규모 송환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유하고, 터키를 통해 그리스로 유입된 난민을 송환하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EU 국가들에 난민을 할당하려던 방안이 동유럽, 북유럽 국가들의 반대로 큰 차질을 빚으면서 할당보다 송환이 더 현실적인 문제 해결책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EU 정상들은 오는 17일 개최하는 EU 정상회의에서 난민 망명 통제 정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는데요. 이 정상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느냐에 따라 유럽 전체의 난민 지형도가 바뀌게 될 전망입니다.

'죽음의 바다' 지중해, 900명 탄 난민선 침몰

리비아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선 한 척이 리비아 해안에서 북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지점에서 침몰했습니다. 배 안에 최소 550명 이상의 난민이 탑승해 있던 것으로 알려져 대규모 인명 피해가 우려됩니다. 이와 더불어 승객 약 300명이 갑판 아래 짐칸에 갇혀 있었다는 생존자의 증언이 있었는데요. 만약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배 안에 대략 900명이 타 있었던 셈입니다. 현재 이탈리아 해상구조대, 몰타 해군 등이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8명이 구조됐고 24명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배가 침몰한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으나 이탈리아 정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전복 때문에 침몰했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해상구조대는 지중해에서 항해 중이던 포르투갈 상선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던 난민선에 접근해 28명을 옮겨 태우던 중 난민선이 뒤집혔다고 발표했는데요. 이로 미루어 볼 때, 난민선에 타고 있던 난민들이 포르투갈 상선 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갑작스레 침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말리, 수단,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넘어오는 난민이 많았으나, 최근 IS가 시리아, 리비아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면서 탄압을 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넘어오는 인구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제이주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지중해에서 익사한 난민만 3천 명 이상이고, 2000년부터 따졌을 경우 약 2만2천 명이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UN, 교황청, 시민단체 등이 너나 할 것 없이 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유럽 측에 요구하고 있는데요. 유럽연합은 소속 회원국의 내무, 외무 장관 긴급회의를 열어 앞으로의 대응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유엔, "리비아 난민선 침몰로 800명 사망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지난 19일 지중해에서 발생한 리비아 난민선 침몰 사고의 사망자가 800명에 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현재까지 생존자는 총 28명, 수습한 시신은 24구로 이탈리아 정부가 발표한 초기 브리핑 내용에서 추가된 사항은 없습니다.

"배에는 10∼12세 어린이들을 포함해 150여 명의 에리트레아인, 시리아인, 소말리아인 등 80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타고 있었다."

카를로타 사미, 유엔난민기구 대변인

BBC, 가디언 등 영국의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난민선 침몰 사고는 배를 운항하던 선장이 실수로 구조를 위해 접근한 포르투갈 선박과 충돌하면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포르투갈 선박을 본 난민들이 배의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의 균형이 무너졌고 이 와중에 다른 선박과의 충돌까지 발생한 것이 전복으로 이어진 것이죠.

현재 이탈리아 검찰은 생존자 중에 포함된 튀니지 국적의 선장 모하메드 알리 말렉과 시리아 국적 일등 항해사 마흐무드 비크히트를 밀입국 알선 혐의로 기소했으며, 선장에게는 집단 살해 혐의를 추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편, 이번 사고로 유럽연합(EU)의 소극적 ‘난민 대응’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데요. 유럽연합은 난민 수색 및 구조에 관한 재원 증대, EU-이탈리아의 합동 국경 통제 임무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 부여, 인신매매단 선박을 소탕하기 위한 잠정적인 리비아 군사작전 등을 포함한 대응 방안을 내놓는다고 합니다. 이 대응 방안은 오는 23일 열리는 유럽연합 지도자 긴급 정상회의에서 제안되며, 각국 지도자들의 승인 이후 실행될 예정입니다.

미봉책만 늘어놓은 '난민 정상회담'

지난 23일, 유럽연합 각국 정상들은 긴급 정상회담을 열어 ‘난민 문제 해결’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AFP통신은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공동성명 초안을 입수해 주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EU 각국 정상들이 합의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EU의 해상경비 작전 ‘트리톤’ 등에 소요되는 수색·구조작업 예산을 매월 300만 유로(약 35억 원)에서 900만 유로(약 105억 원)로 3배 증액한다.

2. 난민 구호를 위해 필요한 선박, 항공기 등을 추가로 투입한다.(현재 항공기 2대, 헬기 2대, 해안순찰정 6대를 운용 중)

3. 난민을 위한 임시거처 5,000여 곳을 마련한다.

4. 리비아, 시리아 등에 주로 몰려 있는 밀입국 조직의 선박을 철거, 파괴하는 EU 차원의 통합 군사작전을 진행한다.

5. 앞으로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착하는 대다수 난민들을 본국으로 송환한다.

국제엠네스티는 EU가 내놓은 성명 초안을 두고 "한심할 정도로 부족하고, 부끄러운 수준의 대응”이라 혹평했는데요. 이번 EU의 대책이 난민의 보호와 구조가 아닌 '유럽으로의 유입 차단’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이뤄낸 합의로 문제 해결에 중요한 돌파구가 마련됐지만 유럽은 바다에서 숨지는 난민을 구조하기 위해 더 분명한 노력을 해야 한다.”

국제 아동인권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올해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 몰타, 그리스 등으로 들어온 난민만 3만6000명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EU가 이들을 수용하는 방편으로 내놓은 '임시거처 5,000여 곳’은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 턱없이 비좁습니다.

또한, 난민 유입으로 인한 이탈리아의 불만은 이번에도 해결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는 EU 회원국 중 난민들이 가장 많이 유입되는 ‘핫플레이스’인데요. 이탈리아는 꾸준히 난민 구조와 수용 비용에 대한 EU 차원에서의 분담을 요구해왔으나, 난민이 거의 유입되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의 반대로 ‘비용 분담안’은 번번이 무산됐고 이번에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어느 하나 적극적인 대처는 나온 게 없다는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총평입니다. 지난 2013년,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인근 해상에서 난민선 전복으로 300여명의 난민이 사망했을 때에도 이와 유사한 대응책이 논의됐는데요. 이번에도 비슷한 논의를 반복하는 걸 보면 EU의 난민 대응책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희망 받고 절망으로 돌려주는 밀입국 브로커

국제이주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약 2만2천 명의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유럽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는 난민 대부분은 아프리카 사람인데요. 이에 반해 밀입국을 알선하는 브로커 대부분은 지중해 바로 밑에 위치해 유럽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리비아 사람입니다.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후, 리비아는 사실상 공권력이 부재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밀입국 브로커와 밀입국 희망자에 대한 단속 또한 불가능했는데요. 이 틈을 타 아프리카 전역의 밀입국 희​망자가 리비아로 몰리게 된 것입니다.

밀입국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밀입국 알선이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밀입국을 시도하는 난민 대부분이 자국에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한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니만큼, 이들의 절박함을 악용한 밀입국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죠. 국제운동단체인 '경계를 넘어' 최재훈 활동가는 지난 22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하여 밀입국 브로커 조직의 연간 수익 규모가 3천억 ~ 7천억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밀입국 브로커들은 난민 한 명을 선박에 태울 때마다 이들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습니다. 선박에 사람을 많이 태울수록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에 선박 정원보다 3~4배 이상의 사람을 태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러한 과승 행위는 선박 안전성에 큰 위협이 됩니다.

​또한, 난민을 태운 선박이 이탈리아 영해에 도착하면 밀입국 브로커를 포함한 선박 승무원들은 다른 배로 갈아타 리비아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탈리아 당국의 밀입국 브로커 단속을 피하려는 방법인데요. 난민선은 그 이후 유럽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자동항법장치로 운항합니다. 이 과정에서 배가 암초에 부딪히는 등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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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입국 선박 안에서 차별, 기아, 폭행, 살인 등 비인간적인 행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브로커들은 인종에 따라 난민들의 선박 탑승 위치를 나누는데요. 피부색이 가장 검은 아프리카인을 탈출하기 힘든 갑판 아래에 가두기 때문에 비상상황 시 더 큰 피해가 발생합니다. 만약 이들이 갑판으로 올라오기라도 하면 총을 쏴 살해하거나, 배 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합니다. 실제 지난 19일 발생한 난민선 침몰 사고 때에도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 일부만 생존했으며, 갑판 아래 갇혀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익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EU, "난민 할당제 시행하자"

27일, EU 집행위원회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로 들어오는 난민을 EU 회원국이 분산해서 수용하는 비상 대책을 EU 회원국에 제의했습니다.

​이 난민 분산 계획은 지금까지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으로 들어온 4만 명의 난민을 대상으로 하는데요. 시리아와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 중 이탈리아로 들어온 난민 2만4천명, 그리스로 들어온 난민 1만6천명이 앞으로 2년간 다른 EU 회원국으로 분산 배치됩니다. 만약 EU 회원국이 난민을 받아들이면 회원국은 난민 1인당 6,000유로(약 725만 원)의 지원금을 받습니다. ​또한, EU는 난민 관련 예산을 충원해 앞으로 2년 간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 2만 명의 유럽 내 정착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EU의 계획에 EU 회원국의 호불호가 갈리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은 EU의 계획에 찬성 의사를 밝혔는데요. 이들 국가 대부분은 현재 유럽 내에서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는 국가에 속합니다. 독일이 지난해 받아들인 망명자 수만 4만7천 명에 달하죠.

헝가리,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등은 난민 분산 배치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럽 내륙에 위치해 비교적 적은 수의 난민이 유입되는 국가입니다.

​이와 더불어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등 3개국은 EU와 맺은 망명 관련 면제 특약을 내세워 난민 분산 배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난민 수용국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앞으로 EU에서 진행하는 난민 분산 계획 표결에서도 제외됩니다.

​이들 3개국과 이번 표결의 직접적 이해관계국인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표결에서 제외돼 총 23개 EU 회원국이 표결에 참여하게 될텐데요. EU의 이번 계획은 회원국 다수의 승인을 얻어야만 통과됩니다.

유럽판 님비(NIMBY), EU 회원국 난민 재분배 합의 실패

지난 20일, EU 가입국들이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장관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안건은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 4만 명을 EU 각국에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회의는 지난 6월 EU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2년 안에 4만 명의 난민을 EU 회원국으로 분배하여 재배치한다고 결정한 바에 따른 후속 회의입니다.

이날 장관회의에서 EU 회원국들은 완벽한 합의에 도달하진 못했습니다. 사실상 합의 실패인데요. 일단 회원국들은 오는 10월부터 대상 난민 4만 명 중 3만2256명의 재배분을 시작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8,000명의 난민 거취 문제를 합의하지 못하면서 전체 합의에는 실패했습니다. 회원국은 오는 12월까지 추가 논의를 진행해 나머지 8,000의 할당을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앞으로 남은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현재 헝가리,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등의 국가들이 난민 수용을 꺼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EU 측은 스페인에 4,300명의 난민 수용을 요청했으나, 스페인은 1,300명의 난민만을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재배치 계획에 매우 비판적이다. 왜냐하면, 이 조치는 (난민들을 유럽으로 유입시킬) ‘유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무부장관, 호르헤 페르난데스 디아즈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또한 난민 수용 불가 입장을 고집하고 있는데요. 과연 EU가 회원국들의 마음을 돌려 4만 난민에 대한 재분배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국경으로 밀려드는 난민들, 대책 마련 나선 EU

지난 주말,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으로부터 들어온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서는 관문인 이탈리아와 그리스, 마케도니아로 밀려들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있던 수천 명의 난민이 마케도니아를 통과해 서유럽, 북유럽 등 유럽연합(EU)으로 향하고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으로 모였는데요.

지난 20일, 마케도니아 정부는 밀려드는 난민들을 막기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그리스와 접해 있는 남쪽 국경을 폐쇄했습니다. 하지만 한자리에 모인 난민 수천 명이 마케도니아 경찰 저지선을 뚫고 마케도니아로 진입하는 등 국경 차단이 무의미하게 되자, 마케도니아 정부는 이틀 만인 22일 남쪽 국경을 재개방했습니다. 난민들은 현재 큰 제약 없이 마케도니아 국경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21일, 마케도니아 국경에서 발생한 마케도니아 경찰과 난민들의 충돌

마케도니아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부터 지난 주말까지 약 4만2천 명의 난민이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난민 대부분은 마케도니아를 넘어 세르비아로 향하고 있는데요.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2~23일 사이에만 약 7,000여 명의 난민이 마케도니아에서 세르비아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이들은 세르비아에서 다시 EU 회원국인 헝가리 국경으로 향할 전망입니다. 하지만 현재 헝가리 정부가 175km에 이르는 국경에 4m 높이의 철조망을 설치하는 등 난민 진입을 막고 있어, 난민들과 헝가리 정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 마케도니아에서 세르비아, 세르비아에서 헝가리로 이동하는 대강의 경로

EU 국가 전역으로 난민들이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커지자 지난 24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회의를 갖고 난민 문제에 관한 공동 대응을 논의했습니다. 양국 정상은 지난 6월 EU 정상회의 때 합의했던 ‘난민 재배치 방안’에 대한 실질적인 이행 방안을 마련하자고 합의했으며, EU 회원국의 연대를 촉구했습니다.

통큰 독일 "시리아 난민 다 받아주겠다"

지난 24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 난민 문제에 대해 논의한 직후, 독일 정부는 처음 발을 들여놓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어디인지 상관없이 모든 시리아 난민이 독일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독일 정부는 자국의 시리아 난민 추방령을 전면 철회하며, 시리아 출신 망명 신청자들에게 유럽연합 어느 국가에 처음 발을 들여놨는지 묻는 서류 작성도 요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이러한 ‘통큰’ 난민 정책은 유럽연합의 난민 정책의 근간인 ‘더블린 규약’을 무력화하는 행동인데요. 더블린 규약이란 '제네바 난민협약의 적용을 받는 난민이 처음 발을 들여놓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해당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의 규약입니다.

애초 이 규약은 특정 국가에 난민들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고 유럽연합 회원국이 공평하게 책임을 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지로 유입되는 난민이 늘어나면서 그리스가 이탈리아가 책임져야 하는 난민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반면, 유럽 내륙에 있는 국가들은 더블린 규약을 들먹이며 자신들이 난민을 책임질 의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문제로 '그리스와 이탈리아' 대 '기타 유럽연합 회원국’의 갈등 구도가 만들어졌죠.

어찌 됐건 독일이 더블린 규약을 무력화하고 자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기로 함에 따라 더블린 규약을 열심히(?) 준수했던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은 상대적인 압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영국이 그렇습니다. 지난 5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영국 총선에서 “이민자 억제를 위해 2017년까지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반(反) 이민 공약을 내세워 재집권에 성공했는데요. 현재도 난민 수용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유럽 내 이민 문제에 회피하는 모습으로 유럽 내에서 많은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독일은 이미 유럽 내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입니다. 올해에만 약 80만 명의 난민을 수용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독일 내에서는 메르켈 총리가 유럽 내 리더십 확보를 위해 과도한 난민 관용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반대 여론도 제기됩니다.

무덤이 되어버린 고속도로, 난민 시신 50여구 발견

지난 27일(현지시간), 헝가리를 지나 오스트리아로 들어오는 국경 인근 고속도로에서 최대 50구의 난민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이 시신들은 고속도로 갓길에 세워진 냉동트럭 냉동칸에서 발견됐습니다.

오스트리아 경찰은 이들이 불법 난민 브로커의 알선을 통해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오던 난민들이며, 이미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기 전 폐쇄된 공간에서 질식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찰은 트럭을 버리고 도주한 브로커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이 불법 난민 브로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불법 난민 브로커들이 보다 수월하게 유럽으로 진입하거나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주거나, 결탁한 국경 관리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자동차나 트럭을 통해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불법 난민 브로커에게 1인당 최소 500유로(한화 약 66만 원)를 내야 한다고 합니다.

불법 난민 브로커들은 조금이라도 위험한 낌새를 느끼면 바다 위건 도로 위건 개의치 않고 난민들을 버려둔 채 내빼곤 합니다. 난민 관련 사고가 유난히 자주 발생하는 데는 불법 난민 브로커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하게도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빈에서 정상 회담을 열고 유럽 난민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마련을 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곳을 찾아 나선 이들이 50명 가까이 사망한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유럽 국가들이 서둘러 문제에 대처하고 연대 정신을 가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경고하는 비극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파도에 휩쓸린 인도주의

​지난 2일, 터키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한 아이의 싸늘한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빨간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해변 모래에 얼굴을 묻고 있는 아이 시신 사진이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을 통해 보도됐는데요. 이 사진은 ‘#파도에 휩쓸린 인도주의’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전 세계에 공유되며 국제사회가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올바른 대처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Rafat al-Khateeb라는 작가가 그린 유럽 난민 문제에 관한 풍자

이 아이는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의 에이란 쿠르디(3)입니다. 쿠르디의 가족은 IS의 공격을 피해 시리아에서 터키로 넘어와 이후 유럽이나 캐나다 쪽으로 이주를 시도하던 중이었습니다. 난민 브로커에게 두 차례 돈을 주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로 가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세 번째 유럽행을 시도하던 중 배가 뒤집혀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고로 쿠르디, 쿠르디의 형(5), 쿠르디의 엄마가 목숨을 잃었고, 쿠르디의 아버지만 살아남았습니다. 사고 이후 거두지 못한 쿠르디의 시신이 파도에 떠밀려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것이죠.

​쿠르디의 죽음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고, 그동안 난민 문제를 등한시했던 유럽 일부 국가들은 엄청난 비난 여론에 직면했습니다.

​영국 캐머런 총리 또한 이 비극적인 사진을 접한 후, 기존 난민 수용에 대한 강경한 반대 입장을 거둬들였습니다.

​"영국은 도덕적인 나라이며 우리의 도덕적 책임들을 이행할 것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아직 영국이 수용할 난민의 정확한 숫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영국은 시리아 국경 지역에 있는 유엔난민기구 난민캠프 난민들을 자국으로 수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과 프랑스가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는 '유럽연합 회원국에게 16만 명의 난민을 강제 할당하는 방안’ 또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난민 품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유럽연합 국가로 향하던 난민들은 유럽연합으로 통하는 관문인 헝가리에 이르러 잠시 주춤했습니다. 난민 수용에 관해 반대 입장을 보이던 헝가리 정부가 난민들을 헝가리 수용소로 이송한 후, 입국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난민을 모두 돌려보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헝가리에서 벌어진 경찰과 난민들의 충돌

지난 4일, ​서유럽이나 북유럽으로 가고자 헝가리 부다페스트 기차역에서 노숙하던 난민들과 경찰의 충돌이 이어졌고, 헝가리 정부는 이들이 열차를 타지 못하도록 잠시 열차 운행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난민 1,200여 명이 걸어서라도 서유럽으로 향하겠다며 도로를 점거한 채 행진을 시작했는데요. 교통 혼잡을 우려한 헝가리 정부는 결국 손을 들고 난민들에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교통편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헝가리를 떠나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향하는 난민들

그리고 다음 날인 5일,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를 통해 자국으로 유입되는 난민을 제한 없이 수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 약 1만 명의 난민이 오스트리아로 유입됐습니다. 이 중 3천여 명은 오스트리아에 남았으며, 나머지 7천여 명은 다시 독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많은 자원봉사자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기차역에 나가 속속 도착하는 난민들을 환영했습니다. 이들은 따뜻한 환영 인사와 함께 음식, 옷, 그리고 아이들의 장난감 등을 나눠주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부는 도착한 난민들을 임시 보호 시설로 이동시켰고, 이후 간단한 절차를 거쳐 이들의 정착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 알린 독일의 난민 수용

독일 정부의 '시리아 출신 난민에 대한 조건 없는 수용’으로 매일 1만 명가량의 난민이 독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지난 12일 하루에만 바이에른주 뮌헨역으로 약 1만2천여 명의 난민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독일 정부는 이번 난민 수용 결정으로 지난해보다 4배 많은 약 80만 명의 난민이 난민 신청을 하리라 예측했습니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약 60억 유로(8조 원)를 난민 관련 예산으로 배정한다고 합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중 절반을 각 지방정부에 나눠주겠다고 밝혔습니다. 각 지방정부가 쏟아지는 난민으로 한계 상황에 직면했고, 이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난민을 수용하는데 한계에 도달했다. 얼마나 더 수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이에른주 대변인, 가디언과의 인터뷰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난민 수용 정책에 대한 정치권 내 반대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기독사회당 호르스트 제호퍼 당수는 현지 언론인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난민의 전례 없는 대량 유입은 독일을 오랫동안 괴롭힐 실수이다. 독일이 곧 통제가 불가능해질 긴급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며 독일 정부의 난민 수용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더불어 실질적으로 난민들을 수용하고 책임질 지방정부의 ​반발도 거세질 전망입니다.

​메르켈 총리의 과감한 난민 수용이 유럽연합 회원국들 간의 난민 쿼터제 수용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독일 정부는 끝없이 이어질 난민 수용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독일 정부의 난민 수용 또한 임시방편인 셈입니다. 하지만 유럽연합 회원국 중 일부 국가(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들이 여전히 난민 쿼터제에 반대하고 있어, 유럽 내 난민 관련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압박 끝에 열린 미국의 난민 빗장

미국이 시리아 난민을 비롯한 난민 수용 및 지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라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시리아에 총 45억 달러의 인도주의 지원을 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지난 4년간 미국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의 수는 1,800여 명이라고 합니다. 자금 지원 규모와 비교하면 난민 수용 규모는 턱없이 작은 수치입니다.

​난민 수용에 조금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박에 따라 미국은 오는 10월부터 시작하는 2016 회계연도에 최소 1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며, 전체 난민 수용 규모를 8만5천 명까지 늘리기로 했습니다. 미국은 지난 몇 년간 매년 7만 명의 난민을 수용해왔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2017년 회계연도에 약 10만 명의 난민을 수용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2년간 약 3만 명의 난민을 추가로 받는 셈입니다.

​시리아에 대한 자금 지원도 늘릴 예정인데요. 미국은 내전으로 위기에 빠진 시리아인을 위해 약 4억1900만 달러의 추가 지원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난민 수용 확대에도 불구하고 최소 400만 명에 달하는 난민들의 거취를 해결하는데 미국이 더 힘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 세계 1등 국가다운 면모를 국제무대에서도 보여달라는 것이죠.

​미국이 이처럼 규모에 걸맞지 않는 난민 수용을 해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9.11 테러 이후 강화된 안보 규정으로 난민 수용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인데요. 테러에 대한 두려움으로 미국 내에는 여전히 대규모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이가 많습니다.

​결국, 미국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EU, 난민 12만 명 분산 수용 합의

지난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28개국 내무·법무장관 회의에서 EU 회원국이 12만 명의 난민을 분산 수용하는 방안이 표결 통과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EU 회원국은 그리스, 이탈리아, 헝가리 등에 머무르고 있는 난민 12만 명을 각국의 형편에 따라 나눠 받아야 합니다. EU와 망명 관련 면제 특약을 맺은 영국과 덴마크는 할당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하지만 이들 두 국가는 각각 올해 4천 명과 1천 명의 난민을 받겠다고 자원했습니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EU 회원국으로 들어온 난민 수(2015년 7월까지)

보통 EU는 사안을 결정할 때 만장일치제를 사용하는데요. 이번 난민 수용안은 EU 역사상 처음으로 가중다수결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가중다수결은 국가별 인구와 경제력 등의 차이를 고려하여 투표권에 차등을 두는 방식입니다. 돈과 인구가 많은 국가는 2~3표를 행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국가는 1표를 행사하는 것이죠.

EU가 만장일치가 아닌 가중다수결을 택한 이유는 체코, 헝가리 등을 포함한 동유럽 국가들이 난민 분산 수용안을 반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독일, 프랑스 등 주요 EU 회원국들은 만장일치로는 난민 분산 수용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는 결국 반대표를 던졌고, 핀란드는 기권했습니다. 나머지 23개 EU 회원국은 난민 분산 수용안에 찬성했습니다. 반대표를 던진 국가들은 '난민 수용은 각국의 주권과 관련한 문제인데, 이를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로 결정하는 발상이 말도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일부 회원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탄생한 난민 분산 수용안이 반쪽짜리 해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EU 회원국들은 난민 12만 명 분산 수용이라는 대원칙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수용안에서 실제 수용하기로 한 난민은 현재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머무르고 있는 6만6천 명입니다. 나머지 5만4천 명의 난민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EU 회원국이 내년에 다시 모여 논의한다고 합니다.

분산 수용하는 난민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난민쿼터제 통과는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수를 더 늘려야 한다. 난민이 급증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12만 명은 20일 동안 발생하는 난민 수에 불과하다.”

유엔난민기구

올해에만 약 47만 명의 난민이 유럽에 들어왔습니다. 독일의 시리아 난민 수용 결정으로 9월 중순 주말에 독일로 들어온 난민 수만 2만 명을 훌쩍 넘습니다. 안 하는 것보다 낫지만, EU 회원국이 나눠 받기로 한 난민 12만 명은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난민 위기에 대한 EU의 대책, 어째 초장부터 삐거덕거리는 모습입니다.

쏟아지는 난민에 식어가는 독일 민심

난민을 바라보는 독일 국민의 시선이 점차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메르켈 총리가 독일로 들어오는 시리아 난민을 전원 수용하기로 하면서 엄청난 수의 난민이 독일로 몰려들었는데요. 올해에만 최대 150만 명이 독일로 들어올 전망이라고 합니다.

​물론 여전히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의 독일 국민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수가 점차 줄고 있다는 것이 문제겠죠. 9월 초, 한 독일 언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85%가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난민 물결이 한 달 이상 계속된 지금, 독일 국민의 56%가 “독일로 유입되는 난민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불어 시리아 난민 포용으로 노벨 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은 난민 수용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설문 결과, 난민 수용에 따른 현 상황에 총리가 책임지고 사임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체 의견의 33%에 해당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난민을 수용하는 지자체들은 난민 수용과 관리에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애초, 시설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아직 난민 관련 예산이 완벽히 할당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독일 각 지역의 지자체장들은 메르켈 총리에게 긴급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독일에서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린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지난 19일, 독일 중부 드레스덴에서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 페기다) 주도로 수만 명이 참여하는 난민 수용 반대 정기 집회가 열렸는데요. 같은 장소에서 이주 옹호 단체 ‘증오 발언 대신 따뜻한 마음’ 산하 단체의 집회가 열려 이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간의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페기다 집회 현장

​페기다 회원들은 시위 중 메르켈 총리를 나치에 비유하는 등 난민 수용 반대에 한 목소리를 냈는데요. 이러한 반대 의견들은 모여 자칫하면 난민에 대한 증오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난민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기 위한 독일 당국의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난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법을 찾기 위해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스,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등 EU 8개국과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등 비(非) EU 10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EU-발칸 미니 정상회의’를 오는 25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는 현재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동유럽, 발칸 국가들이 대거 참석하는데요. 이들이 EU의 중재로 난민 수용에 대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난민 통제로 돌아선 갈대 같은 EU

지난해 유럽연합(EU) 국가들로 유입된 난민은 약 120만 명입니다. 새해에도 난민 유입 추세는 줄지 않아 연초 이후 9주간 13만 명의 난민이 새롭게 유럽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례없는 난민 유입으로 유럽 전역이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끙끙거리며 앓고 있는 국가는 그리스와 터키입니다.

그리스는 지중해 연안에 있어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국가입니다. 더블린 규약에 따르면 난민이 처음 발을 들여놓은 EU 회원국이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해야 하므로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밀려드는 난민을 속수무책으로 수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독일이 더블린 규약을 유보하고 ‘시리아 출신 난민에 대한 무조건 수용’을 선언하면서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 국가의 숨통이 조금 트이는듯 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2015년에만 약 8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인 독일이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난민을 실질적으로 수용하고 관리하는 지자체의 불만이 높아졌고, 크고 작은 난민 관련 범죄가 발생하면서 여론은 악화됐습니다. 독일 정부는 결국 난민 수용책을 포기하고 난민 유입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마케도니아 이북의 동유럽 발칸 국가들이 난민의 이동을 막으면서 이른바 발칸 루트가 차단됐습니다.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들은 꼼짝없이 그리스에 갇히게 됐죠. 그리스에 발이 묶인 난민만 약 3만 명이고, 이달 말까지 10만 명의 난민이 더 도착할 전망입니다. EU는 그리스와 인근 발칸 국가의 난민 수용 능력 확충을 위해 약 9천억 원의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리스와 발칸 국가들은 난민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터키 쪽도 문제입니다. 그동안 시리아 난민들이 터키를 거쳐 EU 국가로 들어가는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 EU 국가의 국경 통제가 심해지면서 난민들이 발이 터키에 묶였습니다. 현재 터키 내에는 시리아 난민 200만 명이 들어와 있는데요. EU는 터키에 머무르는 난민들의 유럽행을 저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방안을 마련하기까지 결국 터키가 난민들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죠. EU는 성난 터키 정부를 달래기 위해 재정 지원, 터키의 EU 가입 논의 등을 재개했습니다.

​이 상황만 보더라도 EU가 난민 위기 대응에 점차 강경하게 나서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지난 7일, 브뤼셀에서 열린 EU-터키 정상회담에서 EU 정상들과 터키 총리는 “너무 많은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들고 있고, 대규모 송환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유하고, 터키를 통해 그리스로 유입된 난민을 송환하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EU 국가들에 난민을 할당하려던 방안이 동유럽, 북유럽 국가들의 반대로 큰 차질을 빚으면서 할당보다 송환이 더 현실적인 문제 해결책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EU 정상들은 오는 17일 개최하는 EU 정상회의에서 난민 망명 통제 정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는데요. 이 정상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느냐에 따라 유럽 전체의 난민 지형도가 바뀌게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