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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관계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 이후 장졔스(蔣介石)의 국민당과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은 치열한 국공내전을 벌였습니다. 1949년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겨간 뒤에도 30여 년 동안 대만 영토인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시 앞바다의 진먼다오(金門島)에 100만 발의 포탄을 퍼 부을 정도로 중국과 대만은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요, 중국의 개혁 개방 과정에서 대만의 기술과 자본이 큰 역할을 하며 양안관계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92공식'은 있고 '하나의 중국'은 없던 대만 총통 취임식

지난 20일,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제14대 대만 총통에 취임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열린 취임식에 중국을 비롯해 많은 외신이 관심 가진 이유는 '차이 총통이 취임식 중 '하나의 중국' 원칙과 '92공식(共識)'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밝힐지 것인지'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차이 총통의 발언들은 어느 하나 명확한 것 없이 모호했습니다.

​​"1992년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기구가 상호 이해와 구동존이의 정신으로 소통과 협상을 진행해 약간의 공동 인식과 이해를 이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다."

대만 차이잉원 총통

차이 총통은 역사적 사실, 즉 92년 당시 대만과 중국의 합의가 있었던 것은 인정했습니다만, 대만 정부가 92공식을 시인하거나 부인하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차이 총통은 "기존 양안의 대화와 소통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며 중국과의 관계를 극단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을 암시했습니다.

​92공식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지만,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의 중국' 원칙입니다. 대만 독립에 비교적 강한 찬성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여당 민진당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말을 아낀 것은 민감한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나름대로의 타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듣는 중국 입장에서는 꽤 불만이었을 대목인데요. 민진당 전의 집권당인 국민당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비교적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는 차이 총통의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대만이 사실상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했다고 보고, 중국 정부의 대만 독립 반대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대만에 어떤 변화가 있어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견지할 것”이라며 “대만 독립 반대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실현한다는 정치적 기초를 확인할 때에만 비로소 양안 간 제도화된 교류와 왕래가 계속될 수 있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중-대만, 상시적 소통기구 설치 합의

중국과 대만이 1949년 분단 이후 65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 당국자 간 공식 회담을 열고 상시 연락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양안 관계(중국-대만 관계)에서 ‘당 대 당’이나 민간기구 차원의 경제 교류를 넘어 정부 간 교류로 나아간 것입니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장즈쥔(張志軍) 주임과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 왕위치(王郁琦) 주임위원은 1992년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따라 합의한 ‘92 컨센서스’를 토대로 상시 대화 기구 설치, 경제협력 심화, 언론 교류 활성화, 문화 교육 협력 확대, 중국 내 대만 유학생의 의료보험 적용 등을 추진키로 했습니다.

대만 경제일보는 1987년 양안 간 첫 민간접촉(양안 1.0시대)과 1993년 최초의 준 정부기구 대화(‘왕구회담’-양안 2.0시대)에 이어 이번 회담이 ‘양안 2.5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시진핑,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 롄잔 만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8일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을 만났습니다. 롄잔 명예주석은 대규모 민간교류 대표단을 이끌고 방중했는데요, 2005년 국민당 주석 신분으로 후진타오 전 주석과 양안 분단 후 처음으로 국공회담을 연 대표적인 친중성향 인물입니다. 중국 신화통신은 이날 두 사람의 회동소식을 전하면서 국가주석, 전 대만 부총통과 같은 직함 대신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롄잔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으로 표기했습니다.

"양안 관계는 국제관계가 아니며 이는 이전에 비해 더 명확해지고 있다. '양안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에 합의한 '92컨센서스'(九二共識)의 기조 아래에서 양안 관계가 진행돼야 한다. 지금 이 시간 이후 양안 관계는 한 계단, 한 계단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높이 나아가야 한다."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

시진핑, '시마회담(시진핑-마잉주회담)' 먼저 언급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과의 회담은 화해 분위기였는데요. 여전히 조율할 부분은 있어 보입니다.

시 주석은 ‘양안은 원래 한 가족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중화민국(대만의 공식 국호)의 존재 사실을 직시하고 중화민국이 양안의 하나의 자산이지 부채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롄잔의 주장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편, 시 주석이 먼저 '시마회담(시진핑-마잉주(馬英九)회담)'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시마회담' 성사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대만 첫 국회점거 사태, 친중국 제동

집권 국민당의 일방적인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비준 움직임에 반대하여 대학생이 주축이 된 학생운동 단체가 18일부터 사흘째 대만 입법원(국회)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만의 홍콩화와 시장 개방에 따른 젊은 세대의 일자리 축소 등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이번 점거농성을 주도한 '흑색도국청년진선'(黑色島國靑年陣線)은 대학생과 대학원생 등이 중심이 되어 2012년 결성한 학생운동 단체로 집권 국민당 정부의 급진 친중국 정책에 대한 견제, 사회정의 실현 등을 관심사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2008년 취임 이후 중국과 21개 항의 양안 협정을 체결하는 등 양안 교류를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등 전방위로 확대하는 것에 위기감을 표시하고, 특히 분단 이후 65년 만에 첫 장관급 회담을 개최하며 협력 범위를 정치 대화 분야로까지 확대할 가능성이 커지자 이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편 야권이 대안 세력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청년 시위의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힙니다.

대만, 대학생 잇단 헌법기관 점거로 '헌정 위기'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에 반대하는 대만 학생단체가 입법원(국회), 행정원(중앙정부) 등 주요 헌법기관을 점거했습니다. 경찰은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인력 2천여 명을 투입해 이들을 강제 해산했고, 이 과정에서 110여 명이 다치고 61명이 체포됐습니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정도가 가벼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국회의장)은 이날 오후 여·야 협상을 중재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습니다. 한편,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에서 "대만 학생들이 현상 유지에만 매몰되어 변화를 선택하려는 용기가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시진핑, 대만에 3단계 통일방안 제시

중국 관영 신화통신 자매지 광밍(光明)일보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과의 통일방안으로 ‘평화적 발전→고위층 왕래→정치협상’의 3단계를 제시했다고 합니다. 시 주석은 최근 중국을 방문한 롄잔(連戰) 전 대만 국민당 부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구상을 밝혔습니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대만과의 통일방안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으로, 중국판 3단계 통일론이 앞으로 양안 교류 과정에서 어떤 정책적 지침이 될지 주목됩니다.

1단계 '평화적 발전'은 양측이 '9·2 공식'(1992년 양측이 하나의 중국을 전제로 서로를 인정하기로 한 합의)을 기초로 교류 협력을 통해 발전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광밍일보는 이를 위해서는 대만에 어떤 세력이 집권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단계는 고위층 왕래 단계입니다. 현재 관광객은 물론이고 경제 사회 인문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한 인적 교류가 이뤄지고 있으나, 점차 정치 분야로 확대되고 궁극적으로 최고지도자 간 회동이 이뤄지는 단계입니다.

3단계는 양측 고위 정치인사 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평화통일 논의로 이어지는 단계입니다.

시진핑, 쑹추위 친민당 주석에 '하나의 중국' 원칙 강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7일 방중한 대만의 쑹추위(宋楚瑜) 친민당 주석과 만나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는 수십 년간 시련을 겪어왔지만, 총체적으로는 전진해왔다. 이것은 역사의 필연"이라며 "'대만독립' 분열 기도를 제지하겠다는 굳은 의지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쑹 주석은 이에 대해 "친민당은 양안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을 고수하고 있다며 대만독립에 반대한다는 신념은 흔들린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국민당 원로 출신으로 지난 2000년 중도우파 성향의 야당인 친민당을 창당한 쑹 주석은 중국과의 화해·융화 노선을 추구해 온 대표적 인사입니다. 2005년에는 베이징(北京)을 방문,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주석과도 회담한 바 있습니다.

중국 장관급 인사 23일 첫 대만 방문, 양안관계 다시 진전

친중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로 잠시 중단됐던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고위 당국자 간 접촉이 재개됩니다. 대(對) 대만 업무를 총괄하는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장즈쥔(張志軍) 주임이 오는 23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대만을 방문할 예정인데요. 장관급인 중국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이 대만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1988년 이 조직이 생긴 이후 처음입니다. 장 주임의 이번 방문은 대만 대륙위원회 왕위치(王郁琦) 주임위원(장관)이 지난 2월 양안 분단 이후 첫 장관급 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데 대한 답방입니다.

그는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臺北) 대신 신베이(新北), 타이중(臺中), 가오슝(高雄)시, 장화(彰化)현 등 지방 도시들을 방문, 자치단체장들과 접촉할 예정이며, 주임위원과도 만날 예정이어서 2차 양안 장관급 회동이 이뤄질 전망입니다. 지난 2월 장즈쥔 주임과 왕위치 주임위원은 중국 난징에서 65년만의 역사적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양안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듯 했는데요. 지난 3월부터 대만 학생 주도의 서비스협정체결 반대 시위가 확산되면서 양안 관계는 답보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장즈쥔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은 4월 대만을 방문하려 했으나 학생운동을 이유로 답방 일정을 연기한 바 있습니다.

중국, 65년만 첫 중국 장관급 대만에 파견

1949년 신중국 성립으로 양안(兩岸) 분단 이후 처음으로 중국에서 대만 관련 사무를 담당하는 장관급 인사가 대만을 방문했습니다.

“베이징(北京)에서 타이베이까지 비행기로 3시간 밖에 안 걸리는 거리를 이렇게 오는 데 꼬박 65년이 걸렸다.”

장즈쥔(張志軍)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

25일 장즈쥔(張志軍)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과 왕위치(王郁琦) 대만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장관)은 제2차 양안 업무 책임자 회담을 가졌는데요. 두 사람은 지난 2월 난징(南京)에서 65년 만에 양안 간 첫 장관급 당국자 회담을 연 바 있습니다. 양안은 이날 준정부기구 사무처 상호 설치, 교류ㆍ협력 상시화ㆍ제도화,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 문제 등을 논의했고 사무처 설치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이뤘습니다. 장 주임은 2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방문 동안 지방 도시들을 두루 방문하고, 반(反)중 성향의 야당인 민진당 인사도 만날 예정입니다.

양안 정치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의 양안 정상회담 실현 여부입니다. 이와 관련 장 주임은 24일 베이징(北京)에서 “양안 정상회담은 국제회의 장소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말하며, 대만이 오는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양안 정상 회담을 추진하는 것을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중국은 국제 행사란 기회를 빌어 양안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국가 대 국가 간 접촉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중국'? 중국과 대만의 동상이몽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주리룬(朱立倫) 대만 국민당 주석이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에서 '국공(國共) 수뇌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번에 열린 중국-대만 최고위급 회담은 지난 2009년 5월 우보슝(吳伯雄) 국민당 주석이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만난 이후 6년 만이며, 중국과 대만이 분단된 지 60년 만에 네 번째로 성사된 회담입니다.

양국 주석은 이번 회담을 통해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을 확인하고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등의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더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하나의 중국’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과 대만의 관계(양안관계)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중국 대륙(본토)과 홍콩, 마카오, 대만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이며,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직 하나일 뿐이라는 이 개념은 '코에는 코걸이, 귀에는 귀걸이’처럼 쓰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의 개념을 사용하지만 이를 해석하는 중국과 대만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먼저 ‘중화인민공화국',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을 살펴볼까요? 이들에게 중국은 오직 중화인민공화국뿐입니다. 현재의 국제 질서에선 중화인민공화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개념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 그리고 다양한 국가의 연합체인 ‘UN’ 또한 이 개념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만을 유일한 중국 내 합법 정부로 인정하며, 대만 또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에 속한다는 주장도 동의 또는 존중합니다. 이 개념에 힘이 실리게 된 결정적 이유는 ‘중국의 어마무시한 경제력’ 때문입니다. 15억이 넘는 인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국 내수 시장 구매력이 중국의 국제 정치력마저 덩달아 상승시켰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을 국제 사회의 왕따로 만들어버렸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본인들과 수교하는 국가가 '국가 대 국가’ 자격으로 대만과 교역 및 외교 관계를 맺는 것을 반대하지만, 비공식적인 관계는 묵인합니다. 사실상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 일부로 보기 때문에 이들이 정상적인 경제 활동과 외교 활동을 하지 못해 ‘말라 죽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제 대만, 즉 중화민국이 생각하는 ‘하나의 중국’을 알아보겠습니다. 중화민국이 생각하는 ‘하나의 중국’은 곧 “중국=중화민국”이라는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중화민국은 분단 이후 지금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불법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중화민국만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1971년 중화민국이 UN 내에서 중국 대표 지위를 잃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그 자리를 차지한 만큼 중화민국의 ‘하나의 중국’ 입김은 약해진 상황입니다.

이 ‘하나의 중국’ 개념이 탄생한 시기는 지난 1992년인데요. 홍콩에서 만난 중국과 대만의 양안 교류 협회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이 각자 해석에 따른 자신들 고유의 명칭을 사용할 것에 합의했습니다. 중국과 대만은 이것을 ‘92컨센서스(九二共識)’라고 부르며, 이들의 관계 개선에 시발점이 된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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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중국과 대만은 ‘하나의 중국’ 개념을 본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양측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굳이 얘기하면 일만 커지니까 지적은 하지 말자! 우리끼린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라며 자기 위안을 하는 것이죠.

역사적인 시마(Xi-Ma) 회담 열린다

중국과 대만이 1949년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합니다. 양국은 지난 5월 공산당과 국민당의 지도자가 만나는 국공 영수회담을 진행한 바 있지만,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정상회담은 성사된 적이 없습니다. 5월 영수회담 당시,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대만의 지도자인 마잉주 총통을 만나지 않고 대신 주리룬 국민당 주석을 만났습니다.

오는 7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참석합니다. 중국은 이번 회담을 국가 간 정상회담의 성격이 아닌 지도자 간의 만남이라고 애써 포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만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양국은 두 지도자 간의 호칭을 ‘선생(先生)’으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서로를 국가로 인정한다면 양측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중국’과 관련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Story 10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서로를 그다지 반길 리 없는 이 두 국가 지도자가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대만의 내부 정치 사정과 연관있습니다.

Caingwen davidreid, flickr (CC BY)
차이잉원 대만 민주진보당 주석

내년 1월 16일, 대만 총통 선거가 열립니다. 현재 수권 정당은 마잉주 총통의 국민당입니다. 물론 국민당은 내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도 승리하고 싶겠죠.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만 빈과일보(蘋果日報)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대만의 주요 정당 지지율은 야당인 민진당(민주진보당)이 34%, 여당인 국민당이 23%라고 합니다. 더불어 민진당 총통 후보 차이잉원의 지지율은 40% 수준으로 국민당 주리룬 후보(현 국민당 주석)를 크게 앞섭니다.

국민당이 친중 성격의 정책을 펼치는 것에 반해, 차이잉원 주석이 이끄는 민진당은 반중국 정서가 매우 강합니다. 대만에 반중 정권이 들어서면 그동안 중국이 쌓아온 양안관계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반중 정권보다 친중 정권이 아무래도 더 낫습니다.

시진핑 주석과 마잉주 총통의 만남은 민진당 쪽으로 기울어지는 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한 ‘히든카드’일 확률이 높은데요. 시 주석과 마 총통이 정상회담을 통해 양안관계 발전과 경제협력 강화라는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국민당의 지지율이 자연스레 상승할 것이라는 계산이죠.

양국이 일편단심으로 추구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이번 정상회담이 양국 지도자 모두에게 큰 정치적 부담을 지는 자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번 회담 한번 꾹 참으면 시 주석은 '대만 내 친중 정권’을, 마 총통은 ‘정권 유지’라는 더 큰 물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 정권 모두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내놓는 선택을 한 셈입니다. 과연 이 선택이 기울어진 대만 총통 선거 지지율에 이변을 불러올 수 있을까요?

중국과 대만은 물보다 진한 피를 나눈 한 가족이다

​지난 7일, 싱가포르에 있는 샹그릴라호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의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양측 정상은 약 10여 분 간의 공개 회담을 마친 후, 각 7명이 참석한 비공개 회담을 약 40분간 진행했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얻은 귀중한 성과 하나를 꼽으라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재확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회담 내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처음 설정한 ‘92콘센서스'를 수십 차례 언급했는데요. 중국 대륙과 홍콩, 마카오 대만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이며,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직 하나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중국과 대만이 각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양측 관계를 더욱 긴밀히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합의한 것입니다.

“양안의 동포가 비바람을 겪고 오랜 시간 단절돼 있었지만 어떤 힘도 우리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 우리는 뼈가 부러져도 살로 이어진 동포이며 물보다 진한 피를 지닌 한 가족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66년의 시공을 넘어 오늘 나와 시진핑 선생은 손을 내밀어 서로 악수했다. 최근 수년 간 쌍방은 대립 대신 대화, 충돌 대신 화해를 취했다.”

마잉주 대만 총통

이러한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의 친화 분위기 조성은 차기 정권을 노리는 민진당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나 다름없는데요. 민진당이 차기 대만 정권을 잡아 반중 정책을 채택하게 된다면, 이는 지금까지 쌓아온 양안관계를 무너뜨리는 꼴이라고 압박하는 것입니다.

회담 중 나온 시 주석의 발언을 살펴보면 이러한 의도가 정확히 드러납니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 내 독립 세력은 양안 평화의 최대 위협 세력이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번 회담을 통해 마잉주 총통은 두 달 뒤에 열릴 대만 총통 선거의 의제를 양안관계로 집중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지속할지, 그리고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는데요. 이미 총통 선거의 승리는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입니다.

더불어 양측은 대만의 외교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AIIB 가입 논의, 중국-대만 핫라인 구축, 정상회담 정례화, 중국 연안에 배치한 미사일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대만 정권 교체, 멀어지는 양안?

지난 16일 시행된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가 집권 국민당의 주리룬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제치고 승리했습니다. 국민당이 정치∙경제 전반에서 '친중 노선'을 밟고 있는 것에 비해, 민진당 차이 당선자는 꾸준히 '독립 대만 노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앞으로의 대만과 중국, 양안 관계가 새로운 변화를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입니다.

이번 대만 총통 선거는 그야말로 민진당의 압승이었습니다. 민진당 차이잉원 당선자의 최종 득표율은 56.1%, 국민당 주리룬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31.0%였습니다. 약 308만 이상의 표차입니다. 지난 2008년 천수이볜 총통이 부패 스캔들로 총통 선거에서 낙마하면서 국민당 마잉주 총통에게 정권을 내준 이후 민진당은 약 8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했습니다. 더불어 차이잉원 후보가 대만 105년 역사상 첫 여성 총통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라는 것 또한 많은 이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Taiwan tsaiyingwon 대만 민진당 페이스북 계정

같은 날 총통 선거와 더불어 대만의 국회의원 선거라고 할 수 있는 입법위원 선출 선거(총선)도 열렸는데요. 이 역시 민진당의 압승이었습니다. 민진당은 총 113석의 입법위원 의석 중 과반 이상인 68석을 차지했습니다. 국민당은 지난 총선보다 29석을 잃어 35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습니다. 민진당이 의회 과반 의석을 넘김에 따라 앞으로의 정국 운영 또한 수월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2008년, 민진당 천수이볜 총통을 밀어내고 정권을 차지한 국민당 마잉주 총통에 대한 지지는 엄청났습니다. 국민당 마잉주 총통과 민진당 총통 후보로 나온 셰창팅 후보의 표차는 무려 220만 이상이었는데요. 이번 총통 선거의 표차가 워낙 엄청나서 그렇지, 2008년 총통 선거의 표차는 당시 대만 총통 선거 역사상 가장 큰 표차였습니다.

이처럼 당시 많은 지지를 받았던 국민당과 마잉주 총통이 맥없이 정권을 내어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중국”때문입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 국민당 마잉주 총통은 정치∙경제 부분에서 친중 노선을 표방했습니다. 중국과 대만은 시장을 개방했고, 교역 규모를 늘려나갔죠. 더불어 지난 11월에는 중국과 대만이 갈라선 지난 1949년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시진핑 주석과 마잉주 총통의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양안에는 훈풍이 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으로부터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대만 경제는 말라 들어갔습니다. 국민당 집권 전 5%가 넘었던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8년 뒤 1%까지 추락합니다. 대만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이유는 최근 중국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지나치게 중국 경제에 의존한 대만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수치로 살펴보죠. 대만으로 유입되는 중국인 관광객은 8년 전보다 13배 늘어 400만 명에 달하며, 양안 간 무역 규모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세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중국은 대만에서 생산되는 수출품의 40%를 사가는 최대교역국입니다.

경제는 도무지 성장세를 보이지 않고, 그마저 이룬 성장도 중국에 기대어 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대만 국민은 지나친 중국 의존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불안은 대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표출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14년 일어난 ‘해바라기 운동’인데요. 해바라기 운동을 일으킨 대학생들은 당시 국민당이 추진한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에 반발해 입법원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장기 농성을 벌입니다. 이 사태는 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져 '탈 중국, 독립 대만’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커져 나갑니다.

잠시 옆길로 새면, 이 해바라기 운동으로 대만에는 ‘시대역량’이라는 새로운 정당이 탄생하는데요. 이번 총선에서 시대역량은 5석을 차지하며 대만 정치의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Taiwan sunflower move 2014太陽花學運紀錄 페이스북 계정
2014년 3월, 해바라기 운동 당시 입법원 본회의장을 점거한 시위대

어쨌든 해바라기 운동은 대만의 젊은이들에게 ‘지나친 중국 의존은 좋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민진당은 이러한 대만 젊은이들의 속내를 간파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생활 방식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대만의 최대 자산이다”라는 선거 전략을 내세워 표심몰이에 성공합니다.

중국 입장에선 차이 당선자는 매우 껄끄러운 양안 파트너입니다. 차이 당선자는 유세 기간 내내 중국에 대한 도발은 최대한 자제하고, 양안 관계를 보전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하며 중국을 달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차이 당선자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합법 정부가 누구인지는 중국과 대만이 알아서 해석한다"는 내용이 담긴 92컨센서스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차이 당선자 취임 이후 양안 관계가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차이 당선자는 최근 발생한 “쯔위 사태”에 대해 강경한 어조로 “누구도 국민이 자신의 국기를 흔드는 것을 억압할 수 없다”며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쯔위 거부 운동’을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대만 내에서도 중국 비난 여론이 거센 만큼 사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나, 당선 직후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자리에서 꽤 거센 논조로 사태를 언급한 점 역시 이번 민진당 정권이 이전 국민당 정권과는 확실히 다른 양안 관계를 바란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지난 이틀간 한 건의 뉴스가 대만 사회를 뒤흔들었다. 한국에서 성장하는 한 대만 연예인이, (그것도) 16살밖에 안 된 여성이 중화민국 국기를 들고 있는 (방송) 화면 때문에 억압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당파를 불문하고 대만 인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은 나에게 국가를 강력하게 만들고, 외부에 대해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차기 중화민국 총통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것을 영원히 일깨워주게 될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 당선자

쯔위 사태를 계기로 양안 관계가 이미 냉각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17일자 사설을 통해 대만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사설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또한 차이잉원의 당선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이 당선인이 민진당을 대만 독립의 환상에서 끌고 나와 대만과 본토 사이의 평화적인 공동의 발전에 공헌하기를 희망한다. 차이 당선인은 양안 관계의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어 천수이볜 전 총통의 위험한 경로를 따르려 한다면 막다른 길을 만날 것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글로벌타임스 17일자 사설

차이 당선자는 아직 취임도 안 했는데 중국과 대만은 벌써 신경전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가까워지고 싶은 자와 멀어지고 싶은 자의 싸움, 과연 누가 승리할까요?

'하나의 중국'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인정은 좀...

그간 중국 정부는 민진당 차이잉원 대만 총통 당선자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담은 ’92컨센서스’의 인정을 꾸준히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차이 당선자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92컨센서스’에 대해 인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는데요. 차이 당선자의 총통 당선 확정 이후, 92컨센서스에 대한 차이 후보의 태도가 앞으로 양안관계를 뒤흔들 도화선이 되리란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22일 차이 당선자는 92컨센서스에 대한 그간의 모호한 태도보다 한발 진전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차이 당선자는 대만 자유시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1992년 양안은 상호이해와 구존동이(求存同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찾기 위한 노력)의 정치적 공감대 하에서 협상을 벌여 약간의 공동 합의를 이뤘다. 나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대만이 중국 경제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양안관계를 급격히 악화시킬 필요가 없다는 게 차이 당선자의 계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92컨센서스를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답했을 뿐, 이를 인정한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미루어 볼 때 차이 당선자가 여전히 중국에 거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중국 정부는 차기 대만 정부의 독립 노선 추구 가능성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대만 경제를 서서히 압박하는 모양새입니다. 23일 대만 연합보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최근 중국 지역별 여행사에 대만행 단체여행객을 최대 3분의 1로 축소하라는 통지를 내렸다고 합니다. 더불어 중국 국민 개인의 대만 자유여행에 대해서도 일시적인 허가 중단이 내려질 예정인데요. 대만을 방문하는 전체 관광객 중 중국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50% 수준으로 400만 명이 넘습니다.

​이번 중국 정부의 대만 여행 제한 조치에 따라 대만 여행 업계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한번 날린 경고장치고는 피해가 상당하죠. 차이잉원 당선자가 자신의 코앞으로 날아든 이 경고장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따라 양안관계의 향배가 결정될 전망입니다.

'92공식'은 있고 '하나의 중국'은 없던 대만 총통 취임식

지난 20일,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제14대 대만 총통에 취임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열린 취임식에 중국을 비롯해 많은 외신이 관심 가진 이유는 '차이 총통이 취임식 중 '하나의 중국' 원칙과 '92공식(共識)'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밝힐지 것인지'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차이 총통의 발언들은 어느 하나 명확한 것 없이 모호했습니다.

​​"1992년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기구가 상호 이해와 구동존이의 정신으로 소통과 협상을 진행해 약간의 공동 인식과 이해를 이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다."

대만 차이잉원 총통

차이 총통은 역사적 사실, 즉 92년 당시 대만과 중국의 합의가 있었던 것은 인정했습니다만, 대만 정부가 92공식을 시인하거나 부인하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차이 총통은 "기존 양안의 대화와 소통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며 중국과의 관계를 극단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을 암시했습니다.

​92공식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지만,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의 중국' 원칙입니다. 대만 독립에 비교적 강한 찬성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여당 민진당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말을 아낀 것은 민감한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나름대로의 타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듣는 중국 입장에서는 꽤 불만이었을 대목인데요. 민진당 전의 집권당인 국민당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비교적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는 차이 총통의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대만이 사실상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했다고 보고, 중국 정부의 대만 독립 반대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대만에 어떤 변화가 있어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견지할 것”이라며 “대만 독립 반대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실현한다는 정치적 기초를 확인할 때에만 비로소 양안 간 제도화된 교류와 왕래가 계속될 수 있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