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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포크스(Guy Fawkes)

가이(Guy). 영어에서 '놈', '녀석' 그리고 뜻이 점점 넓어져 이제는 '너희들'까지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16~17세기에 실제 영국에 살았던 한 남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요. 그 남자의 이름은 가이 포크스(Guy Fawkes)입니다. 그리고 이 남자의 얼굴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기묘하게 웃는 얼굴에 콧수염이 인상적인 마스크로 굉장히 유명하거든요.

그는 저항과 익명의 상징입니다. 그 과정을 몇 편의 영화로 읽어볼까요?

by gato-gato-gato, flickr(CC BY)

홍콩에 나타난 가이 포크스

40일째 우산 시위가 진행 중인 홍콩에도 가이 포크스 가면이 나타났습니다. 11월 5일 가이 포크스의 날을 맞아 몽콕에서 100여 명이, 애드미럴티에서 50명이 가면 행진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무력 충돌이 있었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이 포크스' 마스크를 쓴 민주 시위대, 2014년 11월 5일 홍콩 쇼핑지구

가이 포크스 가면이 그냥 섬뜩한 콧수염 아저씨 가면은 아니었네요. 가면이 필요없는 세상을 꿈꾸며. Bye guys~

영국 신·구교 갈등의 시작. '나는 이혼하고 싶다'

가이 포크스는 가톨릭을 박해하는 영국의 왕 제임스 1세와 의원들을 살해하려고 의사당에 폭탄을 설치했다가 거사 직전에 발각되어 처형당한 인물입니다. 그가 왜 이런 음모를 꾸몄는지 알기 위해서 그 당시 정치·종교적 배경을 조금 짚어볼게요.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와 어머니, 배다른 언니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의 왕은 영국 국교(성공회)의 수장을 겸합니다. 정치적 지도자인 동시에 종교적 지도자인 것이죠. 처음부터 영국의 왕이 교회의 수장이었던 것은 아니고, 수장법을 제정한 것은 튜더스 왕조의 헨리 8세입니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죽은 형의 아내인 캐서린과 결혼(…)했는데요. 헨리 8세는 캐서린의 시녀인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아내와 이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교황은 당연히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죠. 교황과 대립하던 헨리 8세는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정하고 자신을 교회의 수장으로 임명합니다. 영화 <천일의 스캔들>이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헨리 8세가 죽고, 우여곡절 끝에 전 부인 캐서린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1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녀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어머니(캐서린)를 버리고 새 여자를 만나기 위해 성공회를 이용했으니 얼마나 성공회가 미웠겠어요. 그녀는 즉위하자마자 성공회와 칼뱅주의자, 청교도를 학살했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피의 메리(Bloody Mary)'였죠. 메리 1세가 죽은 뒤에는 그녀의 배다른 동생, 즉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당연히 성공회 편이었겠죠? 그녀는 언니처럼 다른 종교의 신도를 학살하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국교를 확립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이 부분은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엘리자베스>를 추천합니다.

가이 포크스, 제임스 1세 폭살 시도

엘리자베스 1세는 후계가 없었습니다.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고 선언했으니까요. 엘리자베스 1세 사후엔 그녀의 먼 친척이자 정적인 '스코틀랜드의 메리'(블러디 메리와 다른 사람입니다)의 아들 제임스 1세가 뒤이어 영국 왕위에 올랐습니다. 영화 <골든에이지>에 엘리자베스와 메리 여왕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고 보는 케이트 블란쳇)

제임스 1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공식적으로 가톨릭을 박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헨리 8세-메리 1세-엘리자베스 1세로 이어지며 불붙었던 종교 갈등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드디어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 가이 포크스는 1570년 요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16세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그는 '신교도'와의 전쟁에 몸담았습니다. 그는 가톨릭을 박해하는 제임스 1세를 제거하고 그의 딸을 왕위에 올려 영국에서 가톨릭을 부흥시키려 했습니다. 1605년, 포크스 일당은 의사당 지하에 폭탄을 설치했는데요. 거사를 치르기 1일 전 발각되어 모두 처형당했습니다.

영국 왕실은 그의 음모가 발각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1월 5일을 '가이 포크스 데이'로 지정하고 불꽃놀이를 즐겼습니다. 사람들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기도 하는데요. 누군가는 그를 조롱하기 위해, 누군가는 그의 저항정신을 기리기 위해 썼겠죠?

가이 포크스의 재림, 브이 포 벤데타

가이 포크스를 대중들 앞으로 데리고 나온 것은 워쇼스키 형제(그 땐 형제였어요)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입니다. 브이 포 벤데타는 3차 대전 이후 모든 것을 정부가 통제하는 영국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11월 5일을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11월 5일! 가이 포크스 데이죠. 영화의 주인공은 압제에 맞서 싸우는 '브이(V)'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시종일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나오고… 음, 아무래도 스포일링은 안 되겠네요. 아무튼 영화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끝납니다.

이때부터 가이 포크스가 대중적인 '저항'의 아이콘이 되어, 오프라인에서도 가이 포크스 가면을 많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해커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가 사이언톨로지 종교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이 마스크를 쓴 것인데요. 이들은 사이언톨로지 신도들의 사진 채증을 피하고자 마스크를 썼다고 합니다. 이후 여러 시위에서 이 마스크는 시위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홍콩에 나타난 가이 포크스

40일째 우산 시위가 진행 중인 홍콩에도 가이 포크스 가면이 나타났습니다. 11월 5일 가이 포크스의 날을 맞아 몽콕에서 100여 명이, 애드미럴티에서 50명이 가면 행진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무력 충돌이 있었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이 포크스' 마스크를 쓴 민주 시위대, 2014년 11월 5일 홍콩 쇼핑지구

가이 포크스 가면이 그냥 섬뜩한 콧수염 아저씨 가면은 아니었네요. 가면이 필요없는 세상을 꿈꾸며. Bye gu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