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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 공포

'엔저', 경제 기사를 보다보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엔저라는 말에 주로 뒤따르는 단어는 '위협', '공포', '쇼크' 등이 있는데요. 엔저가 우리나라에 꽤나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현상이라는 말이겠죠. 그런데 최근 일본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만 느끼는 줄 알았던 엔저 공포를 일본 스스로도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엔저가 공포스러운 이유, 뉴스퀘어와 함께 살펴보시죠.

by Katy Ereira, flickr (CC BY)

끝나지 않은 엔저 쓰나미

엔저는 아직도 폭주 중입니다. 아베 정권은 유가 하락의 여파로 0%까지 떨어진 물가상승률을 목표치인 2%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추가 양적완화를 불사하고 있습니다. 이에 원·엔 환율이 지난 23일 900원 방어선을 깨고 899.67원을 기록하기까지 했습니다. 2012년 6월엔 100엔당 1500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3년 만에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40% 치솟은 것입니다.

이에 기업들이 받는 충격파가 실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중일 3국의 상장기업 경영성과를 비교분석한 결과 한국 기업들이 성장성, 수익성 측면에서 가장 뒤쳐졌다고 합니다. 매출액 증가율로 본 성장성 측면에서 일본 기업은 2013년 11.5%, 2014년 4.7%로 비교적 양호한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일본 기업과의 경쟁 심화, 중국 경제 성장 둔화로 2013년 2.6% 마이너스 성장에 이어 지난해에는 1.4% 성장에 그쳤습니다. 중국은 일본과 우리의 중간 수준입니다.

이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가격경쟁을 할 수 없게 된 우리기업의 어닝쇼크에 따른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례로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2400㏄급이 최저 2만471달러인데 일본의 도요타 캠리 2500㏄급이 그 보다 낮은 가격인 2만350달러에 팔려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품질로 일본 기업을 압도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은 우리 기업의 채산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시장은 올해 원·엔 환율이 850원대를 기록할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800원선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거시분석실장은 "아베노믹스로 인해 일본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경기 불황에서 탈출한다는 최종 목표는 아직 달성하지 못한 것 같다"며 "엔저를 유발할 수 있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계속 유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에 따라 수출과 경제성장률 등 우리 경제가 감당해야 하는 충격파 또한 시간이 갈수록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우리 정책 당국의 통제권 밖에 있는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추가 금리 인하 등의 궁여지책으로 극복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 엔저 쓰나미가 언제쯤 멈추게 될까요?

아베 發 엔저 현상, 우리에게 공포스러운 까닭은?

일본의 달러 대비 환율이 오르내릴 때마다 우리나라엔 크고 작은 엔저 위협이 닥칩니다. 지금껏 엔저의 위협이 '쇼크'로 불리울만큼 컸던 적은 네 번 있습니다. 일본이 부동산 거품 붕괴를 겪은 1989년과 1996년, 일본의 장기불황과 함께 시작된 2004년, 그리고 아베 정부에 의해 전략적으로 추진된 이번의 엔저가 바로 그 것입니다. 앞선 세 차례의 엔저가 일본 경제의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번의 엔저는 경기부양을 위해 아베노믹스가 정책적 차원에서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엔화를 시중에 대량으로 유통시키면서 그 희소성을 감소시켜 엔화 가격 하락을 인위적으로 유도했기 때문입니다.

2012년 1월에 약 1500원의 가치를 지니던 100엔은 지난 달 말 기준, 약 950원으로 떨어졌습니다. 1달러로 살 수 있는 엔은 같은 시점 대비 77엔에서 110엔으로 늘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130~140엔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치고 있습니다. 일본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수출경제에 의존한다는 면에서 우리나라와 흡사한 체질을 가진 나라입니다. 자동차ㆍIT등 경쟁 산업분야도 겹칩니다. 따라서 일본의 엔저가 가속화되면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하락하게 됩니다. 또한 일본인 관광객 의존률이 높은 국내 관광산업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게다가 올 해는 중국의 위안화까지 약세를 보이면서 국내 산업계가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의 고민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죠.

심상찮은 엔저 가속도, 일본 경제도 두렵다?

엔저는 일본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제고시켜주기도 하지만, 분명 역효과도 자아냅니다. 일본경제 입장에서 엔저의 순기능은 자동차와 IT 등의 수출기업 이익 증대, 일본 관광산업 이익 증대로 인한 디플레이션 탈출 견인 등입니다. 반면 엔저에는 원자재 수입가격 상승으로 인한 중소기업 이익 감소,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가계부담, 엔화의 신뢰도 하락 등의 역기능이 따르게 됩니다. 아베노믹스가 추진한 엔저 정책은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바람에 순기능보단 역기능을 심화시킬 우려를 안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 지표를 통해서도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난 2분기 일본의 GDP 성장률이 -7.1%를 기록한 것입니다. 대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제고했음에도 불구, 2분기 노동자 실질 임금 증가율이 -1.8%를 기록한 점도 우려스럽습니다. 또한 일본 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폭이 6월과 7월 3.3%를 기록한 데 반해 8월엔 3.1%를 기록, 하락국면에 접어든 것 역시 심상찮은 징조로 보입니다.

전 일본은행(BOJ) 부총재인 이와타 가즈마사 일본경제연구소장은 '자기궁핍화(beggar thyself)'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 같은 엔저효과를 우려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직접적인 표현을 써가며 엔저 현상에 대한 우려를 내비칩니다. 지난 9월 23일 뉴욕에서 "엔저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효과가 있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지역경제와 중소기업에 미치게 될 영향을 예의주시할 것" 이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의 위치에 있는 아라미 아키라 일본 경제재생담당 장관 역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과도한 엔화 강세도, 과도한 엔화 약세도, 과도한 속도의 변동도 어느 나라의 경제에 있어서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2012년 아베노믹스가 출범하면서 지속적인 엔화 약세정책을 펴왔음에도 불구, 일본 경제의 회복세는 뚜렷하지 못한 반면 환율만 치솟는 현 상황에 대해 일본 재경계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네요.

엔저에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

엔저가 일본 경제에 호재던지 악재던지 간에 우리 경제에 득될 것이 없단 것만은 자명합니다. 게다가 최근 엔저 효과가 단순한 일본 수출상품 가격 인하보단 R&D 투자에 집중되고 있는 탓에 우리나라에 중장기 차원에서 위협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 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엔저로 인한 우리의 단기 수출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엔저에 기반한 일본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대비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고서는 일본 자본재 활용, 한일 기술협력 및 우수 기술 구매, 일본기업 M&A 등 중장기 수출경쟁력 향상안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이러한 점을 감안해 적절한 대응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엔저에 대응하는 가장 전통적인 전략은 기준 금리 인하입니다. 기준 금리 인하를 통해 원화에 대한 대출비용(금리)을 저렴하게 함으로써 원화의 가치도 함께 평가절하시키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방어전략일 뿐,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습니다. 또한 정부의 방침이 '환율은 시장에 맡긴다'는 기조에 기초하고 있는 까닭에 '엔저 방어책'으로서의 기준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그런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엔저 기조를 이용해 일제 고정자본 투자 확대를 유인하는 역발상 전략입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 2일 "엔저를 투자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150억 달러 한도로 저금리 외화대출을 해주고 감가상각을 빨리하는 가속상각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엔저를 등에 업고 우리 기업의 설비투자를 유도해 고용확대와 내수진작 효과를 꾀하겠다는 것입니다. 전례 없던 엔저현상에 맞선 현 정부의 정면돌파. 우리 경제는 엔저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요?

해도 해도 너무한 '일본 추가 양적완화'

'해도 너무 하다'는 말은 이런 때 쓰이려고 생겨난 말일까요? 일본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섰습니다. 다시 말해 엔저 현상이 가속화 될 전망입니다. 일본중앙은행(BOJ)은 지난 10월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현재 60~70조 엔 수준의 연간 본원통화 증가량을 80조 엔 수준으로 늘리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를 위해 국채 매입액을 50조 엔에서 80조 엔으로 늘리는 등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채를 사들인다는 것은 곧 세계금융시장에 엔화를 더 많이 유통시켜 엔화의 가치 하락을 유도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일본이 공격적 통화정책을 쓴다는 건 그만큼 일본 경기 침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뜻입니다. 실제 지난 4월 시행된 소비세 인상 여파로 인해 일본 경제는 소비심리 위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 수출기업들에게 큰 악재로 돌아올 전망입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이) 앞으로는 수출 단가 자체를 내릴 것이며,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자동차, 철강, 기계 업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일본의 추가 양적 완화로 인해 글로벌 통화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다른 나라들 역시 자국 통화를 대거 유통시켜 화폐가치 하락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죠. 특히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 분야에서 일본과 치열한 경합을 하는 독일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아트 호건 운데리치 증권 선임 스트레티지스트는 "성장 둔화를 겪는 나라들이 경기부양에 나설 때 증시는 이를 반긴다. 다음 차례는 ECB(유럽중앙은행)가 될 것"이라며, 경제성장 부진을 겪고 있는 유럽 쪽에서 일본의 양적완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로선 마땅한 대응책을 펼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국제금융시장에서 결정되는 엔/달러 환율에 한국이 개입할 수는 없다"고 못박으면서 "우리나라도 기준금리 등 통화정책을 우리 상황에 맞게 독자적으로 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이미 기준금리를 내릴만큼 내렸다는 점, 그리고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통화정책은 직접적 통화증가 정책이라기보단 간접적 통화증가 유도책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로선 지켜보는 것 외에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엔저 너머엔 뭐가 있을까

일본의 추가적인 엔저공습은 사실상 일본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가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달러화가 강세를 띄는 가운데 엔저가 가속화되는 지금의 상황이 결코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1985년 현재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미국이 '플라자 합의'를 통해 강압적으로 엔화 절상을 끌어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이 일본의 엔저정책을 용인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요? 그 기저에는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미국의 정치ㆍ외교적 목적이 자리합니다. 일본과 동행해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 기조가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미국이 엔저를 용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강달러 - 엔저는 어쨌든 미국엔 큰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일본 안팎에서도 엔저정책에 대한 우려가 속출합니다. 엔저로 인해 일본 증시가 호조를 보이고는 있지만, 일본 국민 가운데 30%는 금융자산이 없을 뿐더러 이들의 경우 엔화 약세로 인한 물가 상승만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게다가 시중에 추가로 유통되는 엔화는 결국 일본 정부의 일본은행(BOJ)에 대한 부채입니다. 부채 증대로 경제를 살리려는 것은 결국 '버블을 창조'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껏 일본 정부가 만들어온 모든 버블이 붕괴되어 왔다는 점에서 지금의 엔저정책 역시 우려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일본은행이 일본 정부의 현금인출기가 되기를 자처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본 미즈호증권의 소토메 데로요시 수석 채권 전략가 역시 "돈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일본은행의 논리에 결함이 있다"며 "일본의 경기침체는 구조적 문제에 따른 것이지 일본은행에서 푼 돈이 적었던 탓은 아니다"고 지적합니다.

일본은 지금 은행도, 기업도 죽을 맛

일본 금융계와 산업계에서는 벌써부터 부작용이 속출합니다. 일본은행(BOJ)의 유동성 공급에 따른 단기금리 하락이 장기금리에도 영향을 미쳐 은행들의 예대마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본 3대 은행(도쿄 미츠비시 UFJ은행, 미즈호은행, 스미모토 미쓰이은행)은 예대마진이 최저수치인 1.01~1.30%에 그치고 있습니다. 일본은행은 엔저를 통해 시중은행의 대출 확대를 노렸지만 이 효과 역시 전무합니다.

미쓰이은행의 스미모토 대변인은 "최근에 신규 기업대출 수요가 거의 없었다"며 "기업들이 이미 막대한 현금을 비축해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나오코 네모토 스탠다드앤푸어스 애널리스트 역시 "BOJ가 확대시킨 유동성은 결국 시중에 흘러들어가지 못한 채 은행 잔고에 쌓이고 있다"며 "BOJ가 애초 의도했던 대출 확대를 통한 경기활성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또 다른 고민에 처해있습니다. 과도한 엔저 때문에 수입 비용 부담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가파른 엔화 약세로 인해 중소기업은 물론 일부 대기업들까지도 비용 증가 부담을 경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문은 조미료, 기계류, 아연제련, 육류가공, 제지, 전자 등 다양한 업체의 부정적 상황을 전하면서 만약 기업들이 수입 비용 부담을 제품 가격인상으로 이어갈 경우, 소비세 인상으로 움츠러든 소비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엔저로 인한 일본 경제 자기궁핍화(begger-thyself)의 악순환이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딜레마에 봉착, 대한민국은 괴롭다

일본의 엔저 정책은 자기궁핍화 외에도 이웃 국가들에 미치는 악영향인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r)"를 초래합니다. 근린궁핍화의 대표적 예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우리 정부는 현재 난감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엔저와 더불어 지난 6일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1조 유로 규모의 추가 양적완화를 시행키로 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강달러가 더해지면서 사태는 더 악화되었습니다. 현 시국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겪는 딜레마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엔저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자니 국내의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출될 것이 분명한데, (강달러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민간투자와 소비가 위축될 뿐 아니라 가계빚 이자 폭탄이 터질 것 역시 분명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위기상황에 봉착한 것입니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원/엔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면 국제적으로 용인된 시장 안정 노력을 하겠다"는 원론적인 대책만을 내놓았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역시 “경제 회복세가 미약한 가운데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경제운용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시장은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 인하로 대응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엔저로 인한 국내 기업의 대수출 가격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앞서 언급한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엔저 쓰나미

엔저는 아직도 폭주 중입니다. 아베 정권은 유가 하락의 여파로 0%까지 떨어진 물가상승률을 목표치인 2%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추가 양적완화를 불사하고 있습니다. 이에 원·엔 환율이 지난 23일 900원 방어선을 깨고 899.67원을 기록하기까지 했습니다. 2012년 6월엔 100엔당 1500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3년 만에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40% 치솟은 것입니다.

이에 기업들이 받는 충격파가 실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중일 3국의 상장기업 경영성과를 비교분석한 결과 한국 기업들이 성장성, 수익성 측면에서 가장 뒤쳐졌다고 합니다. 매출액 증가율로 본 성장성 측면에서 일본 기업은 2013년 11.5%, 2014년 4.7%로 비교적 양호한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일본 기업과의 경쟁 심화, 중국 경제 성장 둔화로 2013년 2.6% 마이너스 성장에 이어 지난해에는 1.4% 성장에 그쳤습니다. 중국은 일본과 우리의 중간 수준입니다.

이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가격경쟁을 할 수 없게 된 우리기업의 어닝쇼크에 따른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례로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2400㏄급이 최저 2만471달러인데 일본의 도요타 캠리 2500㏄급이 그 보다 낮은 가격인 2만350달러에 팔려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품질로 일본 기업을 압도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은 우리 기업의 채산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시장은 올해 원·엔 환율이 850원대를 기록할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800원선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거시분석실장은 "아베노믹스로 인해 일본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경기 불황에서 탈출한다는 최종 목표는 아직 달성하지 못한 것 같다"며 "엔저를 유발할 수 있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계속 유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에 따라 수출과 경제성장률 등 우리 경제가 감당해야 하는 충격파 또한 시간이 갈수록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우리 정책 당국의 통제권 밖에 있는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추가 금리 인하 등의 궁여지책으로 극복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 엔저 쓰나미가 언제쯤 멈추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