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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독립을 원한다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반대 55%, 찬성 44%로 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독립을 꿈꾸는 여러 소수 민족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by Kurdistan Photo كوردستان, flickr (CC BY)

크림 자치공화국 - 우크라이나

크림 자치 공화국은 20세기 중반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안에 자치 공화국의 형태로 속해 있었습니다. 다만 황당하게도 1954년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우크라이나(당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에 우호의 표시로 크림 주(1944년 '크림 주'로 격하)를 넘기고 맙니다. 이 상황이 지속되어 오다 결국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되고, 크림 주는 자치 공화국의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영토에 귀속되고 맙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으로 우크라이나는 친유럽 성향의 서부와 친러시아 성향의 동부로 나뉘어 갈등하게 됩니다. 동부와 서부는 정부 구성에 대한 서로간의 견해 차를 좁혀나가지만, 크림 반도에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러시아인들은 혁명으로 세워진 서부쪽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차라리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절처럼 러시아로 귀속되겠다고 주장합니다.

다량의 지하 자원과 우크라이나 주변 영향력 확보를 위해 호시탐탐 크림 반도를 엿보던 러시아에게 이처럼 좋은 기회가 없었겠죠? 2014년 2월 말, 러시아 군인 복장을 한 무장 세력이 크림 반도 내 주요 시설을 점거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정부는 크림 반도 주변에 군대를 배치합니다. 친러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크림 자치 공화국은 결국 세바스토폴 특별시와 함께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에 발맞춰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크림 자치 공화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데요. 크림 자치 공화국이 계속 우크라이나 안에 자치 공화국으로 있게 되면 이 지역을 합병하는 러시아는 결국 우크라이나 영토를 빼앗는 꼴이 됩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죠. 국제사회와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러시아의 행동을 비난하고 제재를 가하기도 하지만, 러시아는 크림 공화국 합병을 밀어붙여 러시아-크림 공화국 합병 조약에 최종 서명합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 중국

중국 인구의 8.5%는 55개의 소수민족입니다. 많은 민족이 독립을 꿈꾸고 있지만, 중국정부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민족 중 하나가 위구르족입니다.

위구르족은 몽골 고원과 중앙아시아 일대에 자리 잡은 튀르크계 민족입니다. 이들은 중앙아시아 톈산(天山) 산맥 이남에 위구르 왕국을 이루고 살았으며, 다른 튀르크계 민족처럼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어 왔습니다. 1759년, 청나라 건륭제가 위구르 지역을 강제 복속하고, 새로운 경계라는 뜻의 '신장(新疆)'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위구르족이 1944년에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이라는 자치국가를 세웠지만 금방 몰락하였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며 신장 지역은 중국에 완전히 편입되었습니다.

중국은 '민족대가정'이라는 이름 아래, 각 소수민족의 화합과 단결에 기초한 중화민족론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단 한 민족이라도 독립한다면, 다른 소수민족의 독립을 막을 명분이 없어져 중국이 완전히 분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장지역은 경제적 가치도 큽니다. ▲중국 전체 석유 매장량의 30%를 가지고 있고 ▲중앙아시아와의 공동경제권을 형성하는 新실크로드의 중간에 위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서북 변방 개발 명목으로 이주한 한족이 신장 지역의 경제권을 쥐게 되면서, 위구르족-한족의 갈등은 더욱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30일,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기차역에서 폭탄테러와 흉기로 3명이 목숨을 잃고 79명이 다쳤습니다. 이 테러의 주도세력은 중국 내 이슬람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으로 밝혀졌습니다.

카탈루냐 - 스페인

엘 클라시코(El Clasico)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최대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사이의 더비 경기를 말합니다. 엘 클라시코 경기는 유달리 '과격'한데요, 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를, 마드리드가 카스티야를 대표하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사이의 반목은 단순한 '지역감정'을 넘어섭니다.

카탈루냐는 1714년까지 독립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카탈루냐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서 펠리페 5세(카스티야)의 반대편에 섰다가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패해 스페인 영토로 복속되었습니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지방이 스페인 제국에 포함된 후에도 카탈루냐어를 비롯한 고유문화를 지켜왔으나, 1936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부가 카탈루냐의 민족 문화를 탄압하면서 독립에 대한 열망은 점점 커져 왔습니다.

이에 더해, 최근의 독립 요구는 경제적 상황에서 기인한 면도 큽니다. 스페인 인구의 16%가 카탈루냐에 거주하며, 스페인 국내 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인당 GDP도 스페인 전체보다 4,000유로가량 높습니다. 스페인의 가장 부유한 지방 중 하나인 것이죠. 그러나 유럽 금융위기 이후 중앙 정부에 많은 세금을 내고 있지만, 그에 합당한 대우를 못 받고 있다며 독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복속된 지 3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 때문에라도, 카탈루냐는 오는 11월 9일에 독립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강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스페인 헌법상 모든 국민을 포함하지 않는 주민투표는 허용되지 않아, 주민 투표 자체가 불법 판결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중앙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법의 테두리에서 모든 수단을 활용해 주민투표를 저지하는 것뿐”

호세 마누엘 가르시아-마르갈로 스페인 외교부 장관

쿠르드자치정부 - 이라크

쿠르드족 앞에는 '비운의'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습니다. 단 한 번도 근대 민족국가를 형성해보지 못한, 세계 최대(3,000만 명)의 소수민족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형은 최고의 2인자예요'같은 느낌일까요.

쿠르드족은 기원전 9세기, 이란 서부 자그로스 산맥 일대에 세워진 메디아왕국의 후손으로 알려졌습니다. 16세기 이후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이들은, 오스만튀르크가 1차 대전에서 패하면서 독립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변 국가 및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고 여러 국가를 떠돌며 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이라크·시리아·터키·이란의 국경지대에 모여 살고 있으며,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쿠르드자치정부(KRG)를 꾸려 대통령도 선출하였습니다.

IS(이슬람 국가)로 인해 이라크가 혼란스러운 지금. 강력한 군대(페슈메르가)와 키르쿠크 유전 지역(세계 6위 수준 매장량)을 무기 삼아 이들이 독립을 이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체첸공화국 - 러시아

2004년 9월, 최악의 인질극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러시아 북오세티야공화국의 베슬란 초등학교에 무장 체첸 반군이 들이닥쳐 1,200여 명의 인질을 체육관에 감금했습니다. 알 수 없는 폭발로 인질들이 탈출하자, 러시아군과 체첸 반군 사이의 격렬한 총격전으로 156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334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체첸은 1859년, 제정 러시아에 의해 강제 복속되었고, 이후 1920년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소련)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독립을 향한 염원으로 체첸은 자치공화국을 설립하였고,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독립을 용인할 수 없었던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1994년, 체첸에 군대를 보내 수도인 그로즈니를 침공하였습니다. (1차 체첸전쟁) 전쟁이 장기화하며 체첸-러시아는 휴전에 협의해, 체첸은 암묵적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체첸 반군이 다게스탄공화국에서 분리주의세력을 확장하면서 러시아 푸틴 총리 겸 대통령 대행이 1999년 다시 체첸을 침공하였습니다. (2차 체첸전쟁)

독립을 향한 체첸의 행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열차 테러(2009년),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테러(2010년), 이 외에도 검은 과부(러시아군에 남편을 잃은 체첸 미망인)의 자살 폭탄 테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크림 자치공화국 - 우크라이나

크림 자치 공화국은 20세기 중반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안에 자치 공화국의 형태로 속해 있었습니다. 다만 황당하게도 1954년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우크라이나(당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에 우호의 표시로 크림 주(1944년 '크림 주'로 격하)를 넘기고 맙니다. 이 상황이 지속되어 오다 결국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되고, 크림 주는 자치 공화국의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영토에 귀속되고 맙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으로 우크라이나는 친유럽 성향의 서부와 친러시아 성향의 동부로 나뉘어 갈등하게 됩니다. 동부와 서부는 정부 구성에 대한 서로간의 견해 차를 좁혀나가지만, 크림 반도에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러시아인들은 혁명으로 세워진 서부쪽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차라리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절처럼 러시아로 귀속되겠다고 주장합니다.

다량의 지하 자원과 우크라이나 주변 영향력 확보를 위해 호시탐탐 크림 반도를 엿보던 러시아에게 이처럼 좋은 기회가 없었겠죠? 2014년 2월 말, 러시아 군인 복장을 한 무장 세력이 크림 반도 내 주요 시설을 점거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정부는 크림 반도 주변에 군대를 배치합니다. 친러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크림 자치 공화국은 결국 세바스토폴 특별시와 함께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에 발맞춰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크림 자치 공화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데요. 크림 자치 공화국이 계속 우크라이나 안에 자치 공화국으로 있게 되면 이 지역을 합병하는 러시아는 결국 우크라이나 영토를 빼앗는 꼴이 됩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죠. 국제사회와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러시아의 행동을 비난하고 제재를 가하기도 하지만, 러시아는 크림 공화국 합병을 밀어붙여 러시아-크림 공화국 합병 조약에 최종 서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