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담화란 무엇인가

일본의 고노 담화 검증 문제로 국제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담화란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한 견해나 태도를 밝히는 말입니다. 고노 前관방장관이 어떤 문제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야 현재 아베 총리 측에서 강행하는 '담화 검증'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죠.

이번에는 뉴스퀘어와 함께 일본의 과거사 반성 3대 담화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by CSIS, flickr (CC BY)

일본은 역사 교과서 왜곡 등으로 과거사 반성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여전한데요, 일본의 이러한 행동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2년 역사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일본 문부성은 교과서 내용 중 3·1 운동을 '데모'와 '폭동'으로, 동남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고치도록 권고했습니다. 주변 아시아 국가에서는 커다란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당시 스즈키 내각의 관방장관 (일본 내각의 비서실장 역할)인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가 교과서 검정기준에 근린제국조항을 삽입하며 아래와 같이 밝힌 것이 미야자와 담화입니다.

"아시아 주변국들과 우호·친선을 위해 이런 비판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며 정부가 책임을 지고 시정하겠다."

일본의 50번째 종전기념일 (1995년 8월 15일), 당시 총리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하여 아시아의 피해국에 사과한 최초의 총리 담화입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의심할 여지 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

또한 무랴아마 전 총리는 지난 6월 12일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한 한일관계 정립'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부인한다면 각료를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였습니다.

1991년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첫 번째 공식적인 증언(故 김학순 할머니)으로 반일 감정이 최대로 고조되었고, 이에 대해 일본의 직접적인 책임과 사과를 묻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군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며 김 할머니의 증언을 부인했고, 이후 2년 동안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 당국의 자체적인 조사 끝에,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와 그 강제성을 밝힌 것이 바로 고노 담화입니다.

" 장기간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되고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구 일본군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위안소 설치ㆍ관리 및 이송에 가담한 것은 명백한 사실"

"조사 결과 위안소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로 이뤄져 참혹했으며 다수 여성의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줬다. 일본 정부는 종군위안부로 큰 고통을 당하고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모든 분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전달한다."

아베 총리의 3대 담화 수정

아베 총리는 한 번 총리를 지내고 사퇴한 후, 소속 정당인 자민당의 총재가 되기 위한 총선에서 '식민 지배와 관련된 3대 담화(미야자와·무라야마·고노) 모두 수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번 검증 결과 발표는 '고노 담화 흠집내기'의 일환이며, 이를 계기로 고노 담화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노 전 관방장관은 6월 22일 야마구치시 강연에서, 자신의 담화에 대해 "여러 가지 모집 형태가 있었겠지만, 시설에 들어가면 군의 명령으로 일했고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강제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재차 밝혔으며, 무라야마 전 총리 역시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는 게 역사의 역할이기에 그런 면에서 무라야마 담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꼭 지켜야 한다."고 본인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고노 담화가 발표된 배경을 조사하면서 저도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요. 여러분도 이 세 담화에 꼭 관심을 가져주시고 고노 담화의 정신이 꼭 계승되도록 일본 정부를 주시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