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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중력처럼 시스템 전체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너무나도 자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탓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남자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반대로 '여자로 태어나 손해'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여자는 얼마나 있을까. -우에노 치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中-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Q. 제 몸도 못 가눌 만큼 마신 것도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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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술에 취해 성폭행 당한 여성을 보면서, 행실을 탓한 적있다.


A : 어제 성폭행 사건 뉴스 봤어? 여자가 엄청 취해있었다던데.

B : 그러게 왜 그렇게 많이 마셨을까? 자기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마시면 안되는 거 아냐?

이런 대화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나요? 특별할 거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에서도 여성혐오는 존재합니다.

일반적인 범죄에서는 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100% 책임을 묻습니다. 그러나 성폭행 사건의 경우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약 피해 여성이 음주 상태였다면 어떨까요? 바로 위의 대화가 떠오르진 않나요? 취한 게 범죄를 당하게 된 원인인 양 책임을 일부 전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가 또 있습니다.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

그렇습니다. "야한 옷을 입고 다니더니, 결국 일이 났네!" 와 같은 말들이죠.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고요? 그런데 말이죠.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54.1% 여성의 44.1%가 노출이 과한 옷 때문에 성폭력이 일어난다고 응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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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옷이 어떻게 보이나요? 보기에도 평범한 옷입니다. 2018년 1월 벨기에서는 이런 옷들이 전시되었습니다. 바로 강간 피해자들이 성범죄를 당할 때 입었던 옷들이었죠. 예상과 달리, 평범하다 못해 헌 옷처럼 보이는 트레이닝 복, 잠옷들이 대부분이었죠.

결론적으로 말해 노출이 심한 옷으로 인해 범죄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옷차림과는 전혀 무관하게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범죄의 원인을 만취상태이거나 옷차림이 야한 피해여성에게 돌리는 걸까요?

호색한 남자, 순결한 여자

만취한 여성은 '헤픈 여자'라는 인식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취했다는 것은 성적으로 열려있음을 의미하며 더불어 자신을 ‘취약한 상태’로 방치했다는 게 공통적인 정서인 것이죠. 작업주의 존재라던가, 단둘이 술마시면 그린라이트냐는 질문이 수없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걸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헌데 같은 음주상태라도 남성에게는 그런 인식이 없는 반면에, 여성에게만은 그런 이중 잣대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야한 옷차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의 야한 옷차림이 남성을 성적으로 자극했다는 것입니다.

우에노 치즈코는 성에 대한 이중기준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에게 요구하는 성도덕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성은 호색할수록 높게 평가되나, 여성은 성적으로 순결하며 무지할수록 좋다고 여겨집니다. 남자는 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가져도 흠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자친구와 오랫동안 잠자리를 갖지 않으면 무시당하거나 놀림 받기도 합니다. 반면, 술에 취해 자기 몸을 못 가누거나, 야한 옷을 입은 여성은 섹스를 원하거나 그렇게 보이게 했다고 인식하며 그러므로 인해 그 도덕성이 비판 받게 됩니다. ‘걸레 같다, 발라당 까졌다’와 같은 표현들이 여자에게만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이 바로 성적 편견과 여성에 대한 억압이 들어있는 여성혐오입니다.

여성에겐 순결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강요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성생활에 자기검열을 하게 합니다. 또한 이 같은 이미지로 인해 혹여나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문란한 사생활이 알려지면 여성의 사회생활은 고통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혐오'의 사례에 완벽히 부합하죠.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도 일부 책임이 있다?

2015년 발표된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 중 일부

이렇듯 성범죄와 관련한 여성혐오는 사실상 피해자 책임론으로 나타납니다. 2018년 4월 발표된 한국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남성 50.8%, 여성 41.9%으로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피해자 책임에 동의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글의 첫 질문처럼 피해자가 어떠한 상태였는지 알려주는 문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이런 여성혐오가 사회에 너무 당연하게 존재한다는 겁니다. 위의 그림은 교육부의 성교육 지침입니다. 국가에서 배포하는 성교육 자료임에도, 여성의 옷차림에 성범죄의 원인을 찾습니다.

남성의 성충동은 당연하고 통제하기 힘든 것으로 여기면서 그로 인한 성범죄의 원인과 책임 일부를 여성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강한 거절, 야하지 않은 옷차림, 멀쩡한 정신 등 알게 모르게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성적인 의무와 편견, 억압이 녹여진 인식입니다.

이는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유혹의 책임을 넘기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고발을 꺼릴 수 밖에 없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성폭행 당해도 될 이유는 없다

세상에 성폭행 당해도 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어떤 여성이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술을 마신 건 아닌지하고 여성의 행실에 책임을 묻습니다. 살인이 일어나면 살인자에게서 원인을 찾는게 당연한 법인데, 인격 살인이라고 칭해지는 성범죄에선 어째서 피해자에게서도 책임을 찾는 걸까요.

유독 성범죄와 관련해, 한 번쯤 나눴을 법한 대화와 떠올려보는 피해자 책임론에 여성 혐오의 시선이 있다는 사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가해자에게 집중되어야 할 책임을 피해자에게도 묻고,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성적 기준을 적용해온 것, 이 모두가 여성혐오로부터 무관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References (4)
  • 여성혐오를 혐오하다 우에노 지즈코
  • 그런 이중잣대는 사양합니다 제시카 발렌티
  • 2030 남성 33% “성폭력, 피해자 책임” 또래 여성과 인식차 커 한국일보
  • 2016성폭력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Q. 이게 왜 여혐이야?

      1boon https://newmatilda.com/wp-content/uploads/2015/12/Misogyny.jpg

Q. 이게 왜 여혐이야?


(강의실)
A : B야 너 오늘 정말 예쁘다. 오늘 소개팅있냐? 평소에도 그렇게 좀 입지.
C : 그러게ㅋㅋ 간만에 화사하네.
B : 야. 너네 그거 여혐인거 알아? 기분 나쁘네...
A,C : (작은 목소리로) 쟤, 그쪽인가봐?

차별과 혐오

위의 대화가 좀 작의적이긴 하지만, 주변에서 생각보다 흔한 사고의 흐름이죠. 요즘 워낙 여혐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니까요. 그러나 대게의 남성들은 여혐을 이해하기보단, 프로불편러로 상대 여성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 한번도 여성혐오를 당해본 적 없으니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거죠. 그래서 뉴스퀘어가 준비했습니다. 이게 왜 여혐인지 한번 얘기해봅시다.

여성혐오라는 말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몇가지 혐오의 예시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합니다. 우리가 사회속에서 쉽게 인식하는 혐오에는 인종차별, 장애인차별을 통한 흑인혐오, 장애인 혐오가 있습니다.

여성혐오보다는 훨씬 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혐오들이죠. 한국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흑인이란 우리와 다른 것, 평범하지 않은 것, 특이한 것이죠. 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관상의 차이는 차별을 낳고 차별은 혐오를 낳은 셈입니다.

혐오는 단순히 차별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차별을 받는 당사자는 차별을 피하고자 '정상'이라고 불리는 기준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일례로 2017년 8월 16일에 발표된 미국 산부인과 저널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색인종의 경우 화학물질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되어있다고 합니다. 하얀 피부를 위해 많은 미백 용품을 썼고, 흑인 여성의 경우 곱슬머리를 펴기위해 화학 스트레이트 제품을 썼기 때문이죠. 이런 약품들은 성조숙증, 자궁 섬유양, 유방암등을 부릅니다.

이 같은 모습을 더욱 잘 보여주는 건, 미디어인데요. 16년도 중국에선 흑인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니 (피부가 비교적 하얀) 동양인이 나오는 광고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차별과 혐오는 다시 차별받는 대상에게 평범을 강요합니다.

여성차별과 여성혐오

그럼 다시 여성혐오로 돌아와 봅시다. 여성혐오를 위해 좀 특별한 세상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추녀라고 생각하는 여성들로 가득한 세상을 상상해봅시다. 예를들면 이런 겁니다. '사회와 미디어가 얘기하는 여성성'과는 거리가 먼 여성들, 근육질로 우락부락한 여성들이 절반이고, 숏컷에 살이 많이 찐 여성이 나머지 절반인 세상인 거죠. 반면에 남성들이 좋아할만한 여성들, 예를들면 설현이라던가 아이유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은 여성이 아니라 외계인이라고 불린다고 상상해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들, 특히 남성들은 이 이상한 세상의 '여성'들을 분명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현대 한국인의 미의 기준'에서 볼 때 못난 외형을 가지기에 분명 차별도 받을 겁니다. 반면 '외계인'들은 칭송받겠죠. 이 이상한 보통 '여성'들은 외계인처럼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조금씩은 할 겁니다.

그렇다면 앞서 흑인이나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이 '이상한' 세상에선 분명히 이 '이상한' 여성들에 대한 '여성혐오'가 존재하는 셈이죠.

이제 우리가 만든, 우리가 가정한 이 '이상한 세계'에서 많은 시간이 흘러간다면 어떤 모습이 될지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가정한 이 '이상한 여성'들은 점점 외계인의 모습을 따라갈 겁니다. 그래야 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머리도 기르고, 여리여리한 몸매에, 치마를 입고, 하얀 피부에 가끔은 애교도 부리는 그런 모습으로 하나둘 변화할 겁니다. 그래야 눈에 보이는 차별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여성들중 일부는 '외계인'인 아이유처럼 보이기도 할 겁니다. 많은 남성들에게 선택받고, 칭송되겠죠.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과 행동까지 해주면서요. (아이유가 수동적 여성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외형만을 얘기하는 글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꽤나 흘렀다고 생각해봅시다.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요? 남성들에게 선택받을 '여성상'에 부합해야만 혐오와 차별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세상에서 결론은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꽤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이 '이상한 세계'는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입니다. 여성혐오가 만연해서 그것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여성들이 살고있는 세계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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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이 더 명확하게 여성혐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을 역순으로 올라간다면 우리가 평범한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가 왜 여성혐오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하잖아요? 누군가는 살이 쪘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머리가 짧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슴이 작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근육이 우락부락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하는게 못나게 느껴진다면, 뭔가 이상하잖아요?

그렇습니다. 여성혐오는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과 행동이든 할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여성을 싫어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혐오는 여성에게 원하는 모습과 행동을 하도록 강요가 되는 겁니다.

호모소셜과 여성혐오

위에 글을 읽다보면 한 가지가 쉽게 납득 안 갔던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바로 왜 남자들이 가해자냐는 겁니다. 미적 기준이나 행동양식은 남자들에게도 요구되지 않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마찬가지로 외계인과 같은 박보검이나 서강준이 존재하고 나머지 남자들은 그에 따라가도록 압박받는 거 아니냐?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외모지상주의'는 모두에게 작동합니다.

허나 남성과 여성이 처한 상황에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권력입니다. 사실 앞선 호모소셜 파트에서 수도 없이 얘기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회원은 남성이라는 거죠. 우리 사회에서 디폴트는 남성입니다. 가장 극명하게는 정치인, 경제인, 학자를 포함한 사회 지도층에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들, 가정에서도 가장은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 사소하게는 어릴 때도 대장은 남성이라는 점, 슈퍼 히어로의 주인공은 남성이라는 점 등등 수없이 많은 증거들이 주위에 존재하죠.

때문에 여성혐오는 존재하나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남성은 강요를 거부하고 살아도 겨우 연애시장에서 도태되는 것 뿐이지만, 여성은 삶에서 많은 걸 포기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말한다면, 최근 있었던 워마드의 누드모델 사건등을 얘기할 수도 있을겁니다. 물론 그 사건은 명백히 범죄입니다. 그러나 남성혐오는 아닙니다. 개인에 대한 범죄일뿐 남성 전체로 퍼져서, 남성을 압박하짐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지금도 불법사이트들에 퍼지고 있는 여성 몰카들은 거의 모든 여성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면서도 혹시모를 카메라의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준회원이 정회원을 때릴 순 있지만, 계층단위 차별을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Q.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1 Photo by Meghan Duthu on Unsplash

‘애 낳는 기계로 여기지 말라’


2016년 말, 행정자치부가 만든 ‘가임기 여성 출산 지도’로 많은 여성들이 분노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성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뿐일까요? 행정자치부의 극단적인 사례가 아닌 다소 평범해 보이는 사례를 봅시다.

82

이건 서울시의 복지정책 홍보물입니다. 그 중 첫 포스터를 보겠습니다. 82년생 김지영(여)은 누군가의 아내로서, 혹은 어머니로서 복지를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과연 82년생 김민수(남)였어도 #국공립 어린이집 신청 #아동 복지 등이 쓰였을까요?

아마 김민수의 고민은 ‘가정’에 국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82년생 김지영들에게도 재취업이나 창업의 꿈 등 다양한 욕구가 있지만 이러한 건 복지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82년생 김지영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경력 단절을 막을 수 있는 제도, 혹은 본인의 육아휴직이 아닌 남자들의 육아휴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또 여성혐오냐고요?

네, 여성혐오입니다.

여성혐오는 ‘싫어하다’의 의미가 아닙니다. 여성혐오, 즉 미소지니란 남성중심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의 모습과 행동을 강요하는 문화와 제도 등을 총체적으로 의미합니다. 여성이 어떤 모습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여성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남성의 필요에 의한 규정이 엄격한 곳일수록 여성혐오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죠.

여성을 규정짓는 가장 엄격한 규정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위의 포스터는 암묵적으로 또 한 번 여성을 ‘어머니’로 만듭니다. 여성이 ’가임기 여성‘으로서 지도에 표시되듯, 82년생 여성이 가정 내 속한 존재로서 복지의 대상이 되듯 여성은 어머니일 때야 비로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사회 구성원이 됩니다. 별거 아니어 보이지만 이런 인식이 역사적으로 축적돼온 사회에서, 그리고 이에 대한 반감이 생겨나는 시점에서 하필 82년생에 대한 맞춤형 복지를 가정적 영역에만 국한시킨 건 크나큰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여성의 삶은 ‘어머니의 삶’으로 환원되곤 합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어머니가 아닌 여성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여성이 한 일이 아니라 어머니가 해낸 일이다.”

자주 쓰이는 어머니와 여성에 대한 표현들

어머니를 신성시하는 말이자, 여성 한 개인은 혐오하는 말이다

여성을 성 역할에 충실했을 때만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신사임당이 좋은 엄마이고 아내이기 이전에 능력 있는 예술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그렇게 잘 자라지 못했더라면 신사임당이 조선시대 여성 예술인으로서 조명 받을 수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반면 근대 작가 나혜석(1896~1948)은 ‘여성’으로서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바람을 펴 이혼했고, 이후 재혼하지 않고 홀로 살다 죽었습니다. 예술인으로서의 멋진 삶보다 ‘외롭고 쓸쓸한 죽음’에 초점 맞춰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쓸쓸하게 죽지만 유독 그의 쓸쓸한 죽음이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혼하지 않은 여성, 어머니가 아닌 여성은 쓸쓸하고 고독하게 죽으며, 실패한 인생을 산다는 식의 인식을 줍니다.

여성이 어머니와 동일시될수록 여성의 인권 수준은 낮아집니다.

‘어머니’는 여성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시민, 노동자, 여성 등과 함께 한 개인을 규정하는 구성요소일 뿐입니다.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여성을 규정하는 전부가 되는 사회에선 각종 차별적인 문화와 제도가 생겨납니다. 가령 아무리 회사에서 뛰어난 개인이라도 집안일과 육아에 소홀한 여성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1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었습니다. 여성이 투표를 하겠다며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애는 보지 않고, 집안 살림은 남자에게 다 맡기는 악마같은 여자’로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Palczewski, Catherine H. “The Male Madonna and the Feminine Uncle Sam: Visual Argument, Icons, and Ideographs in 1909 Anti-Woman Suffrage Postcards.” Quarterly Journal of Speech. 91.4 (2005): 365-394. Web.
실제로 여성의 참정권에 반대하는 각종 포스터들은 어머니의 이미지에 반하는 여성이 그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여성의 사회 진출에서도 여성은 어머니로서의 정체성과, 자아실현을 원하는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남성들은 아버지로서의 성역할을 짊어지고 사는데??

반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남성들은 대부분 아버지로서 고달프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남성에게 주어진 ‘아버지’라는 성역할은 남성에게 차별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남성은 ‘아버지’로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가정에만 국한돼있지 않습니다. 반면 여성이나 동성애자 등 ‘소수자’는 그들의 정체성이 ‘여성(어머니)’, ‘동성애자’ 등으로만 규정되곤 합니다. 가톨릭국가 아일랜드의 차기 총리인 바러드커는 동성애자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반쪽 인도계 정치인도, 의사 정치인도, 게이 정치인도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구성하지만, 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아일랜드 총리 리오 버라드커

우리가 남자 아니면 여자로 태어나긴 했으나, 늘 '남성'으로서, '여성'으로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의 정체성도, 한국인의 정체성도 다 본인을 구성합니다. 그런데 동성애자는 오로지 동성애자의 정체성으로만 규정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소수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남성은 다릅니다. 아버지로서 가정적이지 않아도 밖에서 좋은 노동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들의 생계는 버려두고 정치의식 높은 시민으로서 시위를 한다 해도 인정받습니다. 그들이 거리에서 시위할 때 ‘애들은 누가 돌봐주나’라는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그들의 아버지로서의 성역할이 사회에서 요구되는 노동자, 시민 등으로서의 정체성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남성 중엔 아버지가 되는 사람도 있고 안(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집안일을 하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은 존재하나 ‘가정을 위해 바깥일을 하는 어머니’의 여성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집안의 ‘어머니’는 위대하지만 집밖에서 마주치는 ‘아줌마’는 추합니다. 어머니라는 정체성은 여성의 수많은 정체성을 사라지게 합니다.

여성은 가정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으며, ‘여성’이라는 성역할만 수행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의식적으로라도 여성을 어머니와 동일시하는 모든 표현은 지양돼야 하지 않을까요?


References (1)
  • 교양인 정희진 <폐미니즘의 도전>

Q. 제 몸도 못 가눌 만큼 마신 것도 문제야.

Woman 3319540 1280

Q. 술에 취해 성폭행 당한 여성을 보면서, 행실을 탓한 적있다.


A : 어제 성폭행 사건 뉴스 봤어? 여자가 엄청 취해있었다던데.

B : 그러게 왜 그렇게 많이 마셨을까? 자기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마시면 안되는 거 아냐?

이런 대화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나요? 특별할 거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에서도 여성혐오는 존재합니다.

일반적인 범죄에서는 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100% 책임을 묻습니다. 그러나 성폭행 사건의 경우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약 피해 여성이 음주 상태였다면 어떨까요? 바로 위의 대화가 떠오르진 않나요? 취한 게 범죄를 당하게 된 원인인 양 책임을 일부 전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가 또 있습니다.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

그렇습니다. "야한 옷을 입고 다니더니, 결국 일이 났네!" 와 같은 말들이죠.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고요? 그런데 말이죠.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54.1% 여성의 44.1%가 노출이 과한 옷 때문에 성폭력이 일어난다고 응답했습니다.

Clothes

사진 속 옷이 어떻게 보이나요? 보기에도 평범한 옷입니다. 2018년 1월 벨기에서는 이런 옷들이 전시되었습니다. 바로 강간 피해자들이 성범죄를 당할 때 입었던 옷들이었죠. 예상과 달리, 평범하다 못해 헌 옷처럼 보이는 트레이닝 복, 잠옷들이 대부분이었죠.

결론적으로 말해 노출이 심한 옷으로 인해 범죄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옷차림과는 전혀 무관하게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범죄의 원인을 만취상태이거나 옷차림이 야한 피해여성에게 돌리는 걸까요?

호색한 남자, 순결한 여자

만취한 여성은 '헤픈 여자'라는 인식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취했다는 것은 성적으로 열려있음을 의미하며 더불어 자신을 ‘취약한 상태’로 방치했다는 게 공통적인 정서인 것이죠. 작업주의 존재라던가, 단둘이 술마시면 그린라이트냐는 질문이 수없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걸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헌데 같은 음주상태라도 남성에게는 그런 인식이 없는 반면에, 여성에게만은 그런 이중 잣대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야한 옷차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의 야한 옷차림이 남성을 성적으로 자극했다는 것입니다.

우에노 치즈코는 성에 대한 이중기준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에게 요구하는 성도덕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성은 호색할수록 높게 평가되나, 여성은 성적으로 순결하며 무지할수록 좋다고 여겨집니다. 남자는 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가져도 흠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자친구와 오랫동안 잠자리를 갖지 않으면 무시당하거나 놀림 받기도 합니다. 반면, 술에 취해 자기 몸을 못 가누거나, 야한 옷을 입은 여성은 섹스를 원하거나 그렇게 보이게 했다고 인식하며 그러므로 인해 그 도덕성이 비판 받게 됩니다. ‘걸레 같다, 발라당 까졌다’와 같은 표현들이 여자에게만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이 바로 성적 편견과 여성에 대한 억압이 들어있는 여성혐오입니다.

여성에겐 순결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강요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성생활에 자기검열을 하게 합니다. 또한 이 같은 이미지로 인해 혹여나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문란한 사생활이 알려지면 여성의 사회생활은 고통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혐오'의 사례에 완벽히 부합하죠.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도 일부 책임이 있다?

2015년 발표된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 중 일부

이렇듯 성범죄와 관련한 여성혐오는 사실상 피해자 책임론으로 나타납니다. 2018년 4월 발표된 한국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남성 50.8%, 여성 41.9%으로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피해자 책임에 동의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글의 첫 질문처럼 피해자가 어떠한 상태였는지 알려주는 문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이런 여성혐오가 사회에 너무 당연하게 존재한다는 겁니다. 위의 그림은 교육부의 성교육 지침입니다. 국가에서 배포하는 성교육 자료임에도, 여성의 옷차림에 성범죄의 원인을 찾습니다.

남성의 성충동은 당연하고 통제하기 힘든 것으로 여기면서 그로 인한 성범죄의 원인과 책임 일부를 여성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강한 거절, 야하지 않은 옷차림, 멀쩡한 정신 등 알게 모르게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성적인 의무와 편견, 억압이 녹여진 인식입니다.

이는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유혹의 책임을 넘기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고발을 꺼릴 수 밖에 없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성폭행 당해도 될 이유는 없다

세상에 성폭행 당해도 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어떤 여성이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술을 마신 건 아닌지하고 여성의 행실에 책임을 묻습니다. 살인이 일어나면 살인자에게서 원인을 찾는게 당연한 법인데, 인격 살인이라고 칭해지는 성범죄에선 어째서 피해자에게서도 책임을 찾는 걸까요.

유독 성범죄와 관련해, 한 번쯤 나눴을 법한 대화와 떠올려보는 피해자 책임론에 여성 혐오의 시선이 있다는 사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가해자에게 집중되어야 할 책임을 피해자에게도 묻고,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성적 기준을 적용해온 것, 이 모두가 여성혐오로부터 무관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References (4)
  • 여성혐오를 혐오하다 우에노 지즈코
  • 그런 이중잣대는 사양합니다 제시카 발렌티
  • 2030 남성 33% “성폭력, 피해자 책임” 또래 여성과 인식차 커 한국일보
  • 2016성폭력 실태조사 여성가족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