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

화가는 그린 적이 없다는데 주변에선 당신 그림이 맞다고 합니다. 충격을 받은 화가는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천경자 화백 이야기입니다. 최근엔 프랑스의 미술품 감정팀이 논란이 된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이 0.0002% 라고 발표했는데요. 진품이라고 주장해 온 국립현대미술관도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그림 한 점을 둘러싸고 25년간 이어진 팽팽한 싸움을 정리해봤습니다.

자식을 몰라보는 엄마?

"안 낳은 자식이, 남의 자식이 와서 저 보고 엄마라고 그럴 때 제가 어떻게 되느냐고요.”

1991년 천경자 화백 VS 국립현대미술관, 화랑협회

‘미인도’는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움직이는 미술관’에 전시되면서 대중에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천경자 화백은 전시된 미인도를 직접 본 뒤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항의했습니다.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현대미술관의 의뢰를 받은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는 일주일만에 7인 전원으로 진품 판정을 내립니다. 그 이후로 미인도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되었습니다. 천 화백은 국내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큰 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천경자 화백

1999년 위조범 권춘식 VS 국립현대미술관, 화랑협회

99년에는 미인도를 그렸다고 주장하는 화가가 나타나면서 위작 논란이 재개되었습니다. 위조 그림을 그려온 화가 권춘식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그렸다고 검찰에 자백한 것인데요. 화랑협회와 현대미술관은 권씨의 증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일축했고 검찰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수사를 접었습니다.

2015년 유가족 VS 국립현대미술관

지난해 8월, 천경자 화백이 미국에서 타계한 이후 언론과 천 화백의 유족에 의해 미인도가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천 화백의 둘째 딸인 김정희씨는 지난해 말, 국립현대미술관에 통보문을 보내 미인도가 천화백의 작품이 아님을 인정하고 고인과 유족에게 진정한 사과를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16년 유가족 VS 위조범 권춘식

위조범 권춘식씨는 유가족이 현대미술관 등을 상대로 검찰에 고소를 하기 한달 전 돌연 말을 바꿉니다. 당시 검찰에서 다른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중 감형을 받기 위해 거짓 자백을 했다는 겁니다. 미인도는 자신이 그린 것이라고 주장해 화백 측에 힘을 실어주었던 권씨의 번복으로 진위논란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 했습니다.

2016년 위조범 권춘식 VS 전 화랑협회 감정위원

권춘식씨는 불과 한 달 만에 한번 더 말을 바꿨습니다. 둘째 딸 김정희씨는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현직 관계자와 미술평론가를 사자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는데요. 권춘식씨는 김정희씨 측 변호인단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미인도는 자신이 그린 위작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달 전에 말을 바꾼 것은 위작 문제가 처음 불거졌던 91년에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감정한 화랑협회 위원이 자신을 회유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경솔했고 후회하고 있다는 진술도 덧붙였습니다. 화랑협회는 권씨의 압력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지난 6월 언론사를 통해 권춘식씨를 회유하는 통화내용이 공개되었고 검찰에도 증거로 제출되었습니다.

2016년 프랑스 감정단 VS 국립현대미술관

검찰은 지난 7월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미인도를 넘겨 받아 본격적인 감정에 들어갔습니다. 천화백의 진품 그림 5점을 추가로 압수해 비교감정을 했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진행한 DNA분석과 필적 감정도 모두 실패했죠. 검찰과 유족은 프랑스의 유명 감정단에 감정을 요청했고 11월 초에 미인도는 고의적으로 만든 가짜라고 판정을 받았습니다. 자체 개발한 3D특수 카메라로 천화백이 그린 그림들과 미인도를 촬영해 대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요. 얼굴의 주요 지점을 1600개로 쪼개 수치로 바꿔 비교한 결과 미인도는 천화백의 진짜 그림과 달랐다고 발표했습니다.

현대미술관은 다음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프랑스 감정단의 판정은 그림의 일부분만 보고 내린 성급한 결론이라는 주장입니다. 고소를 한 유족이 감정단을 선정하고 감정 비용까지 들여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도 유감을 표시했는데요. 프랑스 감정단은 현대미술관의 주장을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논리적인 반박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과학적인 검증 결과를 국제 과학 저널에 공개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였습니다.

2016년 위작 VS 진품

이제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만 남아있습니다. 프랑스 감정단의 판정을 포함해 다른 기관들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할 예정인데요. 미인도가 이번에야말로 제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검찰의 판단을 기다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