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대통령 두테르테는 선인가 악인가

안전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무자비한 폭군이 되는 걸 주저 않는 대통령이 있습니다. 지난 6월 필리핀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입니다. 그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로 현재까지 3600명이 넘는 마약범이 사살되었습니다. 싸늘한 국제 여론과는 다르게 필리핀 국민의 86%가 그를 지지하고 있는데요. 공포 정치 속에서도 그가 인기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그의 통치방식은 정당화 될 수 있는 걸까요? 뉴스퀘어가 정리해봤습니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이래서 인기 "유일한 대안"

두테르테 대통령이 필리핀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마약 범죄를 그 어느 정부보다 강력하게 소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통령 취임 전 22년간 다바오 시장을 지내면서도 마약상을 엄격하게 처단해 다바오시를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만든 바 있는데요. 경찰에게는 반항하는 마약범을 현장에서 사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가 취임한 이후 3600여 명의 마약 용의자가 사살되었고 2만 2천여 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자수한 사람도 73만 명이 넘는다는군요. 경찰청장은 필리핀 내 범죄가 지난해에 비해 49%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마약 관련 범죄에 늘 노출되어 있던 필리핀 국민들은 이제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다며 환영합니다. 이전 정부가 손도 대지 못했던 마약 문제를 정면돌파해 피부로 와닿는 성과를 내는 그를 인정하는 국민이 적지 않은 겁니다.

두테르테가 마약 문제에 이토록 혈안인 이유가 있습니다. 마약범의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외부의 비판에는 필리핀 현지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일축하곤 하는데요. 그는 마약을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으로 규정합니다. 필리핀에서 유통되는 마약은 ‘샤부’라고 불리는 합성 마약입니다. 필로폰으로 알려진 이 마약에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품이 첨가되어 우리 돈 1200원 정도에 1회용으로 팔린다고 합니다. 정신착란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배고픔과 통증을 잊게 해주어 빈곤한 서민들이 마약상들의 타깃이 됩니다. 청소년도 마약상들의 유혹에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충동을 일으켜 강도, 강간, 살인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도 쉽습니다. 중독이 계속되면 재활을 해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뇌에 큰 손상을 준다고 하는데요. 마약은 국민 개개인의 인생을 망가뜨릴 뿐만아니라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국가를 망하게 만드는 주범이라는게 그의 생각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천국과 같은 삶을 누릴 수만 있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져 불타는 형벌을 달게 받겠다.”

두테르테 대통령

이래서 인기 "우리와 같은 사람"

두테르테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도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소수의 정치가문이 정부 요직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모자(母子) 대통령과 부녀(父女) 대통령을 두었던 것처럼 일반 국민이 엘리트 정치에 느끼는 저항감도 적지 않은데요. 두테르테는 이런 배경없이 한 지역사회를 오랫동안 이끌어 온 행정가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 같은 거물 인사에게 막말을 서슴지 않는 모습도 용감하고 행동하는 지도자라는 인식을 주고 있습니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원칙적인 말만 하던 이전 정부에 비해 직설적인 화법으로 솔직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겁니다.

그의 거침없는 통치 방식 때문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서민을 위한 정책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농민을 위한 진보적인 대책인데요. 농민들이 매년 부담하던 수로 사용료를 없앴고 토지개혁으로 소작농 숫자를 줄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주에게 착취 당해 가난이 되풀이 되는 사회 구조를 바꿔 국민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또 정부기관의 수익금을 서민을 위해 쓰도록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필리핀에 있는 모든 카지노장과 복권장을 운영하는 공기업인 파코(Pagcor)는 매년 우리 돈으로 750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낸다고 하는데요. 그동안 정치인의 불법 자금으로 흘러들어가곤 했던 이 돈 전부를 서민의 의료와 교육지원에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기득권 세력에 휘둘리던 이전 정부의 모습에 익숙한 국민들이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나는 오바마에게 책잡힌 게 없다. 내 주인은 필리핀 국민이다.”

두테르테 대통령

이래서 비판 "초법적 독재자"

필리핀 국경을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유엔의 인권기구와 전세계 인권단체, 종교단체는 두테르테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마약 용의자를 재판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서 사살한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법치주의 파괴라고 말합니다. 민주공화국인 국가에서 사회악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사법적인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입장인데요.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마약중독자의 재활을 도와왔던 시민활동가가 사복을 입은 경찰관의 총을 맞고 사망했습니다. 또 극심한 가난으로 생계형 마약거래를 해 온 이들을 처형하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테르테가 ‘OO와의 전쟁’에 나설 때마다 경찰과 함께 소개되는 것이 자경단입니다. 마약 소탕 작전에서는 사살된 3600명 중 1200여명 만이 경찰에 의한 즉결 처형으로 사망했습니다. 나머지는 자경단으로 불리는 비밀조직과 정체불명의 괴한에 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요. 두테르테 대통령이 다바오 시장 시절부터 자경단을 비밀리에 조직해 범죄 용의자를 재판 없이 사살하거나 자신의 정적을 암살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자경단의 일원이었다는 증언자는 두테르테 시장의 지시로 1000여명의 마약상이나 강간범을 죽였다고 고백했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자경단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는데요.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나를 무시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헌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치토 가스콘 필리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이래서 비판 "태국에서 이미 실패한 정책"

두테르테의 극약 처방이 마약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2003년 태국의 사례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탁신 친나왓 총리는 마약 소탕 작전을 벌여 7만 명이 넘는 마약범을 체포하고 32만여 명을 자수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3개월 동안 2,800명이 사살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약 소비가 줄어든 것은 잠시이고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내몰린 마약범들로 인해 전염병이 돌기도 했습니다. 결국 차기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을 중단하고 재활에 중점을 둔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거나 재활시키는 노력 없이 단순히 처벌만으로는 마약 오남용을 뿌리뽑을 수 없다는 교훈을 준 사례입니다.

"태국의 헛되고 파괴적이었던 마약 정책을 13년이 지난 필리핀에서도 다시 하고 있다."

카시아 말리노스카 오픈소사이어티 재단 마약 정책 프로그램 이사

필리핀의 운명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5%가 지났을 뿐입니다. 전세계 지도자를 향한 막말과 무자비한 정책으로 주목을 한꺼번에 받아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뿐이죠. 언제까지 그를 향한 국민들의 지지가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그가 대중적 인기를 반짝 얻고 사라진 대통령이 될지, 필리핀의 개혁을 이끈 영웅으로 남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