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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시 명예훼손과 모욕죄

어떤 사람에 대해 ‘팩트’를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말한 팩트로 인해 그 사람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자칫하다 징역살이를 하거나 벌금을 내게 생겼습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동법 제311조 '모욕죄'입니다. ‘팩트 공격’을 형사 처벌하는 것.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뉴스퀘어가 정리해봤습니다.

francis mckee, flickr (CC BY)

'팩트공격'도 명예훼손이라고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월 20일,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자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른바 ‘표현의 자유 보장법’인데요. 금 의원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일반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쉽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죄목들과 표현의 자유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우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란?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란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명시돼 있습니다.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공연히’란 말은 공연성(公然性)입니다.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법률용어인데요. 대법원에 따르면, 여기서 '인식할 수 있는 상태'란 ‘전파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가령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의 안 좋은 소문에 대해 얘기하고 다녔는데, 이 얘기가 널리 퍼질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요건이 충족됐다’고 봅니다.

실제 판례를 바탕으로(81도1023)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김험담’씨와 ‘이비난’씨는 서로 친구사이입니다. 식당 내의 방 안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김 씨는 이 씨의 친척 ‘박바람’씨가 누군가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이 씨는 이후 박 씨를 찾아가 불륜한 사실을 따져 물었고, 박 씨는 김 씨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던 사건이 있었는데요.

법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김 씨는 박 씨의 불륜사실을 방 안에서 친구 이 씨 한 명을 대상으로만 말했고, 이 씨와 박 씨는 친척관계이기 때문에 이 씨가 박 씨의 불륜사실을 알았다고 한들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다닐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김 씨가 박 씨의 불륜을 오픈된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말했다면, 이는 전파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고 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


그런데 일부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지속적으로 일고 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주장한 금 의원도 “국가기관과 공무원 등이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악용하여 고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세계적 흐름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폐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는데요. 실제로 OECD 국가 중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형사 처분을 하는 나라는 한국과 터키 뿐입니다. 독일이나 일본에선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대해서만 형사처벌을 합니다. 지난 해 10월, UN자유권 규약위원회는 한국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명예훼손을 비범죄화 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었죠.

물론 불특정 다수에게 명예훼손성 사실을 발설했다고 다 처벌받는 건 아닙니다. 법원은 공익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는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를 ‘공익’으로 볼 것인가는 참 애매한 문제입니다. 게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살아있는 한, 나중에 무죄판결이 날지라도 그때까지 소송 공방을 벌여야 합니다. 고소·고발과 소송의 부담 때문에 하려던 얘기를 못하는 경우도 많겠죠.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고 비판받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폐지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여전히 힘을 받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만을 근거로 법을 폐지하기엔 부작용이 크다는 건데요. 일간베스트, 강남패치 등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신상털이’가 횡행하는 상황입니다.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에 관한 논란도 우리사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고요. 형사처벌은 불가피하다는 게 폐지 반대 측의 입장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공익성 여부가 모호하고 폭좁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폐지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합니다. 법원도 점차 사실적시 명예훼손성 발언이나 게시글에 대해서 공익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고 있습니다. 법의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