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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의 '이상한' 법정관리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간지 20여 일이 지났습니다. 정부는 한진그룹·해운 전 경영진과 대주주에게 물류대란를 해결하기 위한 자금을 내놓으라고 연일 압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행태는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업 경영 부실을 초래한 경영진과 대주주의 책임은 어디까지 일까요. 한번 천천히 따져봅시다.

Darin Marshall, flickr (CC BY)

회장님의 책임은 어디까지

한진그룹 대주주 압박 놓고 찬반 논란

물류대란 급한 불을 끄려면 긴급자금 마련이 시급합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주도하는 법원은 물류대란 해결을 위해 약 1700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해(公海)를 떠돌고 있는 선박에 실린 짐만 내리는 데 드는 비용입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각 각 400억 원, 100억 원 씩 총 500억 원의 사재를 내놨지만 사태 해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에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한진해운 선박의 화물 하역을 위한 자금은 한진해운과 대주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한진그룹을 연일 압박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에서 “기업의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에 물류대란의 책임이 있다”며 “결코 묵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습니다.

하지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대주주에게 사재출연을 강제하는 것은 주식회사의 ‘유한책임 원칙’을 흔드는 일이며, 한진그룹 계열사들이 경영 활동에 사용돼야 할 자금이 법정관리 신청으로 이제 더 이상 한진그룹 계열사도 아닌 한진해운을 위해 쓰는 것은 일종의 ‘배임죄’이며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행 이후 18일이 지난 지금 아직도 가압류 ·입출항 불가 등으로 34대의 선박이 바다 위 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물류대란을 해결할 주체는 과연 누구일까요? 한진해운을 위기로 몰고 간 경영진과 대주주일까요. 아니면 대비책도 없이 한진해운을 법정으로 보낸 정부가 책임져야 할까요? 한번 천천히 따져봅시다.

부실기업 총수 '사재 출연' 무한책임 VS 유한책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을 해결하기 위한 긴급자금 마련에 각각 400억 원, 100억 원 씩 총 500억 원의 사재를 내놨습니다. 일각에선 사재 출연이 대주주로서 도의적으로 당연한 행동이었다고 보는 반면 대주주의 사재 출연을 강제하는 것은 상법에서 보장하는 ‘유한책임원칙’을 흔드는 일이라며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영권을 포기한 조양호 회장에게 사재출연을 강제할 법률상 근거는 없습니다.오히려 상(商)법(331조)에서 보장하는 유한책임원칙에 어긋납니다. 유한책임원칙이란 주식회사에 투자하는 주주는 원칙적으로 자신이 투자했던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원칙으로 다시 말해 주주들의 개인 재산으로 회사의 채무를 책임지지 않도록 법으로 보장한 것입니다. 지난 4월 한진해운의 경영 악화로 자율협약이 진행되자, 조양호 회장은 경영권을 포기하는 내용의 각서를 채권단에게 제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율협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채권단은 추후 발생할 분쟁을 막기 위해 경영권 포기 각서를 함께 제출받습니다.)

사재출연 요구는 법정관리의 본질에도 반합니다. 법정관리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채무를 조정하는 과정입니다. 이미 자기 손을 떠난 회사를 대주주라는 이유로 개인적인 책임을 지라고 강요하는 건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에서 “상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유한책임 원칙은 아무 과실도 경영에 관여도 하지 않은 (외부)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경영권을 행사한 지배주주를 면책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즉 조양호 회장은 단순한 대주주가 아니라 경영권을 직접 행사한 주주이기 때문에 아예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양호와 최은영이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들에게 사재출연을 강제할 수 있었을까요? 판례에 따르면 경영진이 고의로 회사를 위기에 처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 아닌 정상적인 경영판단에 따른 부실인 경우 경영진에게 별다른 손해배상책임은 없습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가게 된 것은 경영자만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고유가와 글로벌 물동량 감소, 해상 운임 하락은 해운산업이 생긴 이래 60년 만에 오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글로벌 해운사 중에 정부 지원 안 받고 생존해 있는 곳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역시 "기업의 부실원인이 사업실패라고 하더라도 경영자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요인에 의한 사업실패라면 경영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주주에게 법에도 없는 의무를 강제할 경우, 대주주의 책임과 권한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해야 할지 사회적으로 혼란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겨레 기고 글에서 “이런 식으로 대주주의 도덕적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다 보면 나중에 거꾸로 법에도 없는 총수의 권한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