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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좌파정권 ‘핑크타이드’의 위기

남미 지역의 '핑크타이드(Pink Tide)'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지난 달 31일 브라질에선 중도 좌파 성향의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2014년 말까지만 해도 남미 12개국 중 10개국이 중도 좌파 정권이었는데요. 현재는 브라질을 비롯해 과테말라, 베네수엘라, 페루, 아르헨티나 등 여러 국가들이 중도 우파 성향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핑크타이드의 위기'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요. 도대체 무엇이 위기라는 건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Walter Vargas, flickr (CC BY)

남미를 강타한 원자재의 저주

왜 남미 국민들은 더 이상 핑크타이드를 지지하지 않는 걸까요.
일단 몇몇 남미 국가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과테말라 2015년 10월 지미 모랄레스(국민통합전선당) 중도우파 대통령 당선

아르헨티나 2015년 11월 친기업 성향의 중도우파 정치인 마우리시오 마르키 대통령 당선

베네수엘라 2015년 12월 총선에서 중도 보수주의 야권 연대 민주연합회의(MUD)가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 차지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은 극심한 경제난에 현재 국민소환 투표로 축출 위기

페루 지난 6월 5일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에서 세계은행 경제학자 출신인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후보가 승리

브라질 지난 8월 31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으로 현재 우파 성향의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
 
자, 상황을 보니 핑크타이드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만하군요.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국가들은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원자재가 풍족한 나라였다는 점과 정부의 미래 전략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원자재의 저주'에 걸렸다고 할 수 있겠네요.  
 

원자재의 저주란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자원빈국보다 낮은 현상을 말합니다.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경제 특성상 산업구조를 다양화하기 어렵고, 가격 변동에 취약해 예측 가능한 경제계획을 수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993년 영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오티가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 하는군요. (한국경제신문 용어정리)

이때까진 좋았는데

 
남미 국가들은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원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요, 원유가 수출의 95%를 차지합니다. 철광석과 원유 등을 수출하는 브라질과 밀, 옥수수, 콩 등의 농산물을 주로 수출하는 아르헨티나는 각각 전체 수출액 대비 원자재 비율이 49%, 70%나 됩니다.

마침 좌파 정권이 집권하던 시기는 세계 원자재 시장의 호황기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세계 시장에 중국이라는 큰 손이 등장하면서 남미 지역의 원자재를 흡수하다시피 사들였고 남미 국가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했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죠.

남미좌파정권이 포퓰리즘 정책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습니다. 써도 써도 다시 채워지는 곳간을 정부는 비우고 비우는 데 열중했습니다. 빈민층에게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지원, 대학등록금 면제, 월급보다 많은 퇴직연금 지급 등 '지출'에 초점이 맞춰진 복지 정책들이 잇달았습니다. 빈곤에 허덕이던 국민들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치자 원자재 가격이 크게 하락했고 원자재 의존도가 높았던 남미 국가들은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미의 물주였던 중국도 양적인 성장을 멈추고 질적 성장을 이룩하겠다는 '신창타이(중국식 뉴노멀)'를 외치며 원자재 수입량을 줄여나가게 되었죠.

새로운 전략 없이 원자재 수출에만 의존하던 남미 국가들은 줄줄이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데요, 지난해 베네수엘라는 -5.7%, 브라질은 -3.8%, 아르헨티나는 0.4% 성장에 그쳤습니다. 수출길이 막히자 꽉 채워져 있던 남미의 국고도 이내 바닥나버리고 맙니다. 계속해서 퍼주던 복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국민들의 불만이 솟구치게 되었죠.

진짜 문제는...

 
사실 복지정책을 펼쳤던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원자재 가격 하락에 대비한 플랜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미의 좌파정권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이런데다 남미 국가들은 산업구조가 1차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공산품은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해 쓰고 있었는데요. 달러가 부족해 물건을 수입해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됩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유가 하락으로 수출이 반토막나면서 공산품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올랐고 현재 공식적인 물가상승률은 180%, 전문가 예측 물가상승률은 500%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시위를 벌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한 걸까요 내다보지 않은 걸까요. 결과적으로 남미좌파정권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신산업 육성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계획 없는 분배만 있었죠. 잇따른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형 부패 추문도 국민들의 반감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국가를 잘 운영해줄 새 지도자를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남미에 새로운 물결이 일게 될 조짐이 보이시나요?

핑크타이드(Pink Tide), 넘나 생소한 것

일단 핑크타이드가 뭘까요?

 
Pink Tide. 생소하지만 남미대륙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단어입니다.

핑크타이드는 '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을 뜻하는 말입니다. 급진적인 공산주의의 물결을 뜻하는 용어로는 '레드타이드(Red Tide)'가 있는데요. 이에 비해 온건하다 하여 'Red'보다 연한 'Pink'를 붙여 만든 말입니다. 2000년대에 등장한 온건 사회주의(핑크타이드) 계열은 이념적 평등을 주장하며 혁명을 외쳤던 급진 사회주의(레드타이드) 계열과는 노선이 조금 달랐습니다. 이들은 대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의 자본주의적 성질을 수용하면서도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지원하는 유럽식의 온건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따른 집단입니다.

남미 지역에서는 1999년 베네수엘라의 좌파 성향 인사인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당선을 시작으로 이러한 좌파 물결이 퍼져나갔습니다. 이 물결은 2014년 말까지 이어졌는데요, 남미 12개국 중 파라과이와 콜롬비아를 제외한 10개국에 모두 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정권이 들어섰었습니다. 때문에 핑크타이드는 '남미좌파정권'을 뜻하는 말이 됐습니다.이들 정권이 집권 초에 공통적으로 주장했던 것은 ‘소득 재분배를 통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축소’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남미에는 좌파정권이 득세하게 됐을까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중남미 지역을 지배하던 ①빈곤과 불평등 ②반미감정 ③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를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차례대로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죠.

중남미 국가에는 오래 전부터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심각했는데요. 남미 빈곤의 역사는 피식민의 역사에서 시작됐습니다. 과거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지배를 받았던 중남미는 식민지 피지배의 영향으로 중산계층의 발달이 미약합니다. 국민들은 소수의 대지주와 다수의 농업노동자로 이원화됐고 이들 간의 빈부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극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런데다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낮아 빈곤의 악순환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됐습니다. 중남미 국가들은 19세기 들어 차례로 해방을 맞이하게 되지만 해방의 기쁨을 맛본 것도 잠시, 이들은 또다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번엔 미국입니다.

해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중남미 국가들은 19세기 세계 최강의 패권국으로 발돋움 한 미국에 사실상 예속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중남미는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지원 아래 경제적으로도 종속되면서 농업∙자원수출과 같은 1차 산업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특히 20세기를 거치며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backyard)' 취급을 받게 되고, 중남미 전역에는 자신들의 빈곤이 미국의 경제∙사회적 착취 때문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게 됩니다. 이렇게 싹튼 반미감정은 아직도 중남미 지역의 국민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편, 내부적으로는 20세기 중반까지 중남미 국가들을 지배하던 군사독재정권이 물러가고 1970년대 말부터 중남미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곧이어 1980년대에는 외채위기가 이들을 강타하게 되죠. 모아둔 자본이 없었던 중남미 국가들은 70년대에 걸쳐 대규모 외채를 들였고 국제금리가 급격히 상승하자 직격탄을 맞게 된 겁니다. 외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중남미 민주화 정권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과 외채 재협상을 시작했는데요. 중남미 국가들은 외채탕감 및 신규차관을 얻어내기 위해 IMF가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IMF의 요구사항은 곧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체제개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외환위기(1997) 때도 IMF의 요구조건을 받아 들이면서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도입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로 인해 중남미 국가들은 외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출대비 40~50%를 원리금으로 상환해야 하는 긴축재정에 들어가면서 물건을 팔아봐야 빚 갚는 데 써야하는 상황이 지속됐죠. 자연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도 줄고 실업자 수도 증가합니다. 결국 국민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실패한 정책이라 부르짖게 됩니다

결국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나선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였고, 국민들이 느낀 결과는 더욱 심화된 빈부격차였던 겁니다. 중남미의 국민들은 미국 중심의 경체제제에 반대하고 경제자립과 빈곤탈피를 원했습니다. ‘소득 재분배를 통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주장한 핑크타이드 정권이 이 시기에 맞물려 득세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크나큰 지지를 받고 등장한 핑크타이드가 지금은 왜 국민들에게 외면 받게 된 걸까요? 다음 시간에 파헤쳐 보겠습니다. 커밍 순.

남미를 강타한 원자재의 저주

왜 남미 국민들은 더 이상 핑크타이드를 지지하지 않는 걸까요.
일단 몇몇 남미 국가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과테말라 2015년 10월 지미 모랄레스(국민통합전선당) 중도우파 대통령 당선

아르헨티나 2015년 11월 친기업 성향의 중도우파 정치인 마우리시오 마르키 대통령 당선

베네수엘라 2015년 12월 총선에서 중도 보수주의 야권 연대 민주연합회의(MUD)가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 차지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은 극심한 경제난에 현재 국민소환 투표로 축출 위기

페루 지난 6월 5일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에서 세계은행 경제학자 출신인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후보가 승리

브라질 지난 8월 31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으로 현재 우파 성향의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
 
자, 상황을 보니 핑크타이드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만하군요.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국가들은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원자재가 풍족한 나라였다는 점과 정부의 미래 전략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원자재의 저주'에 걸렸다고 할 수 있겠네요.  
 

원자재의 저주란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자원빈국보다 낮은 현상을 말합니다.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경제 특성상 산업구조를 다양화하기 어렵고, 가격 변동에 취약해 예측 가능한 경제계획을 수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993년 영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오티가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 하는군요. (한국경제신문 용어정리)

이때까진 좋았는데

 
남미 국가들은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원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요, 원유가 수출의 95%를 차지합니다. 철광석과 원유 등을 수출하는 브라질과 밀, 옥수수, 콩 등의 농산물을 주로 수출하는 아르헨티나는 각각 전체 수출액 대비 원자재 비율이 49%, 70%나 됩니다.

마침 좌파 정권이 집권하던 시기는 세계 원자재 시장의 호황기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세계 시장에 중국이라는 큰 손이 등장하면서 남미 지역의 원자재를 흡수하다시피 사들였고 남미 국가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했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죠.

남미좌파정권이 포퓰리즘 정책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습니다. 써도 써도 다시 채워지는 곳간을 정부는 비우고 비우는 데 열중했습니다. 빈민층에게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지원, 대학등록금 면제, 월급보다 많은 퇴직연금 지급 등 '지출'에 초점이 맞춰진 복지 정책들이 잇달았습니다. 빈곤에 허덕이던 국민들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치자 원자재 가격이 크게 하락했고 원자재 의존도가 높았던 남미 국가들은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미의 물주였던 중국도 양적인 성장을 멈추고 질적 성장을 이룩하겠다는 '신창타이(중국식 뉴노멀)'를 외치며 원자재 수입량을 줄여나가게 되었죠.

새로운 전략 없이 원자재 수출에만 의존하던 남미 국가들은 줄줄이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데요, 지난해 베네수엘라는 -5.7%, 브라질은 -3.8%, 아르헨티나는 0.4% 성장에 그쳤습니다. 수출길이 막히자 꽉 채워져 있던 남미의 국고도 이내 바닥나버리고 맙니다. 계속해서 퍼주던 복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국민들의 불만이 솟구치게 되었죠.

진짜 문제는...

 
사실 복지정책을 펼쳤던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원자재 가격 하락에 대비한 플랜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미의 좌파정권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이런데다 남미 국가들은 산업구조가 1차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공산품은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해 쓰고 있었는데요. 달러가 부족해 물건을 수입해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됩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유가 하락으로 수출이 반토막나면서 공산품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올랐고 현재 공식적인 물가상승률은 180%, 전문가 예측 물가상승률은 500%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시위를 벌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한 걸까요 내다보지 않은 걸까요. 결과적으로 남미좌파정권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신산업 육성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계획 없는 분배만 있었죠. 잇따른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형 부패 추문도 국민들의 반감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국가를 잘 운영해줄 새 지도자를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남미에 새로운 물결이 일게 될 조짐이 보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