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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와 민주주의

2016년 6월 23일,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국이 EU에 가입한 지 43년만의 일입니다. 브렉시트에 따른 여파는 경제적인 부분에만 미치지 않았습니다. 세계 각국이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될 정도로 브렉시트에는 정치적인 영향도 컸습니다. 일각에서는 브렉시트를 ‘직접민주주의의 폐해’로 규정합니다. 다른 한 쪽에서는 ‘과거세대가 미래를 결정했다’며 이른바 ‘실버민주주의’를 우려하고 있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두 차례에 걸쳐 브렉시트 속 직접민주주의와 실버민주주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UK Parliament, flickr (CC BY)

지금 우리에겐 어떤 민주주의가 필요한가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된 배경은?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2013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 반(反) EU 정서가 심화하던 있던 때였습니다. EU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이 인기를 끌고, 집권 보수당 내에서도 EU 회의론자들이 몸집을 불리던 시기였죠. 당시 위기감을 느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던진 승부수가 바로 ‘브렉시트 국민투표’였습니다.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할 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한 겁니다. 캐머런 총리의 승부수가 먹혀든 걸까요.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승리를 거뒀고, 이로써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실시됐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잘 알려졌다시피 영국의 EU 탈퇴입니다.

왜 ‘국민투표’였나?


왜 영국은 브렉시트를 국민투표로 결정했을까요? 선거 승리를 위한 캐머런 총리의 무리수였던 걸까요?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보긴 어렵습니다. ‘국가의 중요한 사항을 의회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정치적 불신이 국민투표 실시에 한 몫 했기 때문인데요.

그동안 많은 영국 국민들은 의회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회를 선도하고 여론을 형성하긴커녕 국민의 인식변화조차 쫓아가지 못하는 기성 정치권, 지리멸렬한 파벌 싸움에 골몰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겁니다. 이주 노동자, 난민에 대한 이슈가 대표적이죠.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내에선 외부인들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었지만 기성 정치권은 국민들의 의견을 번번이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대의제 민주주의에 한계를 느낀 국민들이 직접 브렉시트를 결정했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설명입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습니다. '21세기는 어느 때보다 정치에 대한 열정이 강하지만 그와 함께 정치 불신이 가장 큰 시기'라며, 국민들이 기성 정치를 혐오하는 대신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캐머런 총리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공약은 도화선이었을 뿐, 불을 붙인 건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이라는 뜻입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직접민주주의의 폐해?


상당수 언론인과 지식인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성을 보여줬다고 논평하고 있습니다. 우선 브렉시트가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데요. 사실 브렉시트는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국제 질서가 변할 수 있는 중대한 결정이었죠. 영국에만 국한해서 보더라도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에 대한 투자가 급감하고 금융시장의 피해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 내 구글에는 ‘EU란 무엇인가’, ‘EU를 떠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같은 검색이 급증했다고 하죠. 영국 국민들이 충분한 고려 없이 투표에 참여했을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정치·경제·외교분야의 전문가와 관료들에게 브렉시트 결정권을 위임했어야 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직접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게 하는 것은 정치인의 책임 회피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특정한 결정이 가져올 리스크를 피하고 국민에게 결정의 책임을 돌린다는 건데요. 실제로 어떤 경우 직접민주주의는 통치권자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유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쳤고, 91.5%의 찬성률을 근거로 유신헌법 개정을 정당화한 바 있습니다. 국민의 직접적인 결정이 반드시 옳은 결정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나 충분한 정보 제공도 숙의(熟議)도 없는 직접투표는 형식만 직접민주주의일 뿐, 진정한 의미의 직접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떤 민주주의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배제하고 모든 결정을 정부와 의회가 결정하도록 해야 할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브렉시트 사태를 촉발시킨 건 대의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서였습니다. 국민의 대표자가 다수의 의견을 듣기보단 소수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집중하면서 대의제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니까요.

따라서 무조건적인 대의제 만능주의도, 국민의 직접 선택이 옳다는 맹목적인 믿음도 옳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들만의 리그’ 같은 대의제를 바꾸고, 국민들로부터 숙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고민하는 일일 것입니다. 국회의원 후보자 등은 선거 때에만 국민의 공복(公僕)이 되겠다고 선언할 게 아니라 진정 함께하는 정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되, 국민의 소리에만 휘둘리지 않고 미래를 위한 선제적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디언>등 영국 주요 언론은 과거와 달리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있으므로 국민투표 같은 형식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영국인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기간에만 자유롭다. 새로운 의원을 뽑는 즉시 영국인들은 다시 노예가 된다.

장 자크 루소

300년 전 장 자크 루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8세기에 했던 말이 21세기까지 적용되는 현실이죠. 민주주의의 발전이 시대 변화조차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는 어떻게, 어떤 형태로 변화해야 할까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시대에 던져 준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