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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사태

4season_santa, flickr (CC BY)

약은 약사에게, 영화제는 영화인에게

스물한 살 성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2014년 9월 시작된 부산시와 영화제의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까닭인데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9개 단체로 구성된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범영화인비대위)’는 지난달 18일, 올해 BIFF 참가를 전면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반면 부산시는 올해도 영화제를 열겠다는 입장입니다. 21회 BIFF는 열릴 수 있을까요.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영화제 측과 부산시의 갈등을 짚어봤습니다.

2014년: “영화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vs “어떤 영화를 틀든 영화제가 결정할 일”


다툼은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을 놓고 시작됐습니다. 2014년 영화제 측은 <다이빙벨>을 상영작으로 선정했는데요. 이 같은 결정에 대해 BIFF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이 “영화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며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말 것을 주문한 겁니다. <다이빙벨>이 세월호 참사를 한 쪽 시각에서 다룬 영화라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이를 놓고 영화제 측을 비롯한 영화계 사이에서는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훼손했다’는 거센 반발이 일었습니다. 작품 선정은 전문영화인인 프로그래머가 결정할 부분인데 관(官)이 개입했다는 겁니다. 결국 영화제 측은 19회 BIFF에서 <다이빙벨> 상영을 감행합니다.

2015년: “영화제를 방만하게 운영했다” vs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보복이다”


<다이빙벨>로 부산시와 영화제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던 중, 2015년 세 가지 위기가 영화제 측에 닥칩니다. 부산시의 지도점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지원금 삭감, 그리고 감사원의 감사가 그것인데요. 부산시의 경우, 영화제가 방만한 회계 운영, 불투명한 인사, 부적절한 프로그램 선정 등을 했다는 지도점검 결과를 내놨습니다. 영진위는 전년도 BIFF에 지원했던 예산 14억6000만원에서 40% 삭감된 8억원을 책정했습니다.

감사원은 영화제 사무국이 협찬금 중개 수수료를 편법적으로 지급했다는 특별감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용관 BIFF 집행위원장과 전·현직 사무국장 등이 ①특정 업체와 2억 2천만원의 허위 협찬금 중개계약서를 작성, 3355만원의 수수료를 준 뒤 2817만원을 돌려받았으며, ②협찬 중개활동을 하지 않은 업체를 마치 계약한 중개업체인 것처럼 꾸며 2750만원의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겁니다. 모두 영화제 측에서는 ‘영화제 길들이기’, ‘의도적 흠집내기’라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어찌됐던 부산시는 지난 해 12월 감사원의 특별감사결과에 따라 이 집행위원장 등을 횡령ㆍ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부산시의 보복”라는 영화계의 반발은 더욱 커지게 되죠. 그리고 갈등은 올해까지 이어집니다. (지난 5월 3일 검찰은 이 전 집행위원장과 집행위 전·현직 사무국장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2016년: “영화제 측의 독단” vs “정치로부터 영화제를 지키는 일”


지난 2월, 부산시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재신임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해촉했습니다. 그리고 서병수 부산시장은 BIFF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고 자리를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밝힙니다. 그동안 서 시장이 맡았던 BIFF 조직위원장 자리는 정관에 따라 부산시장이 맡는 당연직이었는데요. 부산시는 민간이양을 함으로써 BIFF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영화인들은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을 맡는다는 정관을 개정한다거나 하는 후속조치가 없었다는 게 근거인데요. 게다가 부산시가 비공개적으로 내놨다는 안(案)에 따르면,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임명’하는 방식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영화제가 다시 정치논리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이렇게 생각한 영화제 측은 정관을 개정하기로 합니다. 개정을 통해 당연직 임원을 없애는 등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건데요. 문제는 정관을 개정하기 위한 정족수가 부족하자 ‘자문위원’을 대거 위촉한 것이 또 다른 논란을 낳게 됩니다.

BIFF 조직위원회의 최고 의결기구는 ‘영화제총회’인데, 임원, 집행위원, 자문위원으로 구성되고 모두가 1인1표를 행사하는 구조입니다. 정관 변경의 경우는 재적회원의 2/3가 동의하면 가능하죠. 그런데 조직위원장(부산시장)의 승인이 필요한 집행위원과 달리, 자문위원은 인원수의 제한 없이 집행위원장이 위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전 집행위원장은 임기만료 전, 영화인으로 구성된 68명의 신규 자문위원을 위촉했고 재적회원의 2/3인 104명이 넘는 107명의 자문위원단을 구성했습니다. 영화인의 의지에 따라 정관변경이 가능해진 것이죠.

당연히 부산시에서는 반발했습니다. 68명이나 위촉한 것은 집행위원장의 재량권 남용이라는 건데요. 이에 따라 부산시는 법원에 ‘자문위원위촉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따라서 아직 정관변경은 이뤄지지 않았고 부산시는 민간에 이양할 새 조직위원장을 물색 중입니다.

“영화는 매우 정치적이지만, 영화제가 정치적이었던 게 아니라 마이클 무어가 정치적이었던 것이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BIFF 사태를 둘러싸고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의 발언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화씨 911>을 칸 영화제에서 트는 게 정치적인 것 아니냐는 ‘우문(愚問)’ 대해 내놓은 ‘현답(賢答)’입니다. 초라한 성년을 맞은 BIFF의 처지가 떠올라 안타까워집니다. <다이빙벨>이 정치성을 띤 영화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영화를 튼다고 해서 그것이 전체 영화제의 성격을 규정할까요. 이 같은 발상이 지난 20년간 BIFF를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영화인들의 수고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건 아닐까요. 약은 약사에게, 영화제는 영화인에게, 영화를 보고 판단하는 건 관객에게. ‘Back to the basic’이란 경구가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홍형숙 감독 作 <Be Independent For Free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