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전쟁

  • 2016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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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신씨

dirtyboxface, flickr (CC BY)

기사식당의 인기 메뉴가 ‘돼지불백’인 이유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즐기는 것은,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행위다”

- 이시다 고로(일본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
3313 by chW 스틸컷
배가 고파진 이시다 고로(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이시다 고로는 골목길을 헤맵니다. ‘꼬르륵’ 소리가 나는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배고픔 그 자체에 집중하는데요. 자신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하고 가게를 찾은 순간부터 고로의 식사는 시작됩니다.

그는 “음”, “우마이(맛있다), 오이시이(맛좋다)”를 연발하며 고독하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음식을 먹습니다. 그에겐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즐기는 게 최고의 행복이자 권리이기 때문인데요.

3471 by chW 스틸컷

그의 말처럼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행위일까요? 배꼽시계와 자신의 식욕에 솔직할 수 있는 직장인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선뜻 동의하기 힘듭니다. 특히나 눈치껏 ‘메뉴통일’을 외쳐야 하는 넥타이 부대에겐 비현실적으로 들립니다. 양복을 입은 고로가 그토록 자유로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건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요? 상사와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테리어 소품이나 골동품 등을 수입해 판매하기 때문에 다른 직종에 비해 자유로운 겁니다.

이렇듯 노동환경이 사람의 음식 섭취부터 배출을 결정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가에 따라 식사 환경부터 화장실 이용 행태가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기사식당의 인기 메뉴가 돼지 불백’인 이유도 ‘화장실을 가기 힘든 노동 환경’ 때문입니다. 류동민 교수의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에 따르면, 돼지 불백이 국물이 적어 택시 기사들이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시내에 있는 빌딩들은 대부분 화장실을 개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요행히 드나들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기다린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불법주차 딱지라도


떼이면 하루벌이를 고스란히 과태료로 물어야 한다.’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p.138~p.139

먹는 것부터 마무리까지 노동환경을 고려해야하는 건 택시 기사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형마트 캐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카트>나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JTBC 드라마 <송곳>에서도 볼 수 있듯, 캐셔 노동자들은 맘 편히 화장실을 갈 수 없습니다. 계산대를 비운 사이 손님이 오면 관리자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물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합니다.

야구 해설자들도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경기에 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안치용 KBSN 해설위원은 “중계석과 화장실 간 거리가 먼 경기장의 경우 야구해설자들은 그냥 참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화장실 갈 자유를 보장하라'

화장실을 둘러싼 갈등,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 시카고에선 “Stop Bathroom Harassment"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 수도꼭지 회사가 직원들의 근무중 화장실 이용을 조사하고, 하루에 6분 이상 쓰지 못하도록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6분을 초과한 19명에겐 경고 조치를 내렸습니다. 대신 쉬는 시간이나 근무 시간 외 화장실을 이용한 사람에겐 인센티브를 준다고 했다는데요. 이에 반발한 일부 노동자들은 ”Respect Dignity(우리의 존엄성을 존중 해달라)"고 외쳤습니다.

화장실 이용의 자유,

전세계 노동자들이 원하는 권리입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정책특보의 책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모잠비크의 노동자들은 유급 출산 휴가, 최저 임금 같은 용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 와중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으로 ‘변변한 화장실이 일터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화장실을 눈치 안 보고 갈 수 있었으면’이라는 응답이 나왔다고 합니다.(<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p.43)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즐기는 것은,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행위다”

이시다 고로의 이 말은 ‘자유롭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현대인’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가능한 외침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