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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제공=포커스뉴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한일 위안부 합의 비판

지난 7일, 유엔의 여성 인권문제 전문기구 중 하나인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충분하지 않다는 내용의 심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위원회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요. 위원회는 지난 2009년에도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적절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해 12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습니다. 그런데도 위원회가 또다시 보고서를 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되짚은 이유는 한일 정부 간 합의 내용이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 방식을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일본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스기야마 신스케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한일 정부 간 합의 이후에도 “군과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었다”는 발언을 하며 합의를 무색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최종 견해는 위안부 문제는 (한일 정부 간 12.28 합의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합의가 신속히 실행되길 요구한다”

​"지도자나 당국자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가볍게 보는 발언을 해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번 심적 고통을 주고 있다. 위안부 이슈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는 접근은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 방식을 충분히 취하지 않은 것”

이스마트 자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위원

합의 당사자인 한일 양국은 예상치 못한 위원회의 심의 내용 발표에 당황한 모습입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한일) 합의는 피해자와 피해자 단체들 의견 수렴을 통해 도출됐다. 12월 28일 합의가 충실히, 성실히 이행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유엔 발표는 한일 간 합의를 비판하는 등 일본 정부의 설명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것이어서 매우 유감이다. 받아들일 수 없다. 양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성실히 실행에 옮겨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난감한 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반 총장은 한일 합의 당시 양국의 합의를 환영하는 성명을 냈는데요. 과거의 그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이번 위원회 측의 보고서는 반 총장의 입장과 배치됩니다. 이에 대해 스티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위원회는 의견을 냈고, 반 총장은 자신의 견해를 밝혔을 뿐”이라며 “이번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독립적인 의견”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60년의 기다림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이 만주사변(1931년), 중일전쟁(1937년), 태평양전쟁(1941년)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1945년)하기까지 운영한 전시 성 노예 제도이며, 동시에 그 피해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2005년 국제앰네스티의 ‘60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기다림: 일본군 성 노예제의 생존자들을 위한 정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조선인, 중국인, 대만인, 필리핀인, 말레이시아인, 인도네시아인, 네덜란드인, 동티모르인, 일본인 여성이며, 그 숫자는 2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위안부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다. ▷▷▷)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는 등 침략 전선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일본군은 침략 전쟁 중 ▲현지 여성에 대한 강간 발생률 축소 ▲통제되지 않은 강간과 매춘을 통한 군인 성병 감염 방지 ▲군인 사기 진작 등을 명목으로 일본군 점령지에 ‘위안소’를 설치했습니다. 일본 육군성은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위안소 설치, 운영, ‘위안부’ 모집 및 수송을 직접 주도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 상태였던 조선인 여성은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등의 취업 사기, 인신매매, 협박 및 폭력에 의한 동원, 납치 등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동원됐습니다.

Comfort women victims
중국과 미얀마 국경지대에서 포로가 된 일본군 '위안부'를 연합군이 촬영한 사진

위안소 생활은 참혹했습니다. 피해 여성들은 일본 군인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하루에 수십 명을 ‘상대’하고, 월경 중에도 쉬지 못했습니다.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성 노예 생활로 인한 성병 및 원치않는 임신의 고통 외에도 칼로 찌르고, 담뱃불로 살을 지지는 등의 폭행과 고문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일본군은 제2차 대전에서 패배하고 퇴각하며 ‘위안부’를 한데 모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증언 ▷▷▷)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 및 위안소 운영이 민간 업자의 소행이며, 관헌(정부) 차원의 개입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쥬오대 교수가 일본 방위청(현 방위성)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고 일본군 ‘위안부’ 모집을 감독·통제한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를 발견하고 1992년 1월에 공개했는데요. 이듬해 1월 가토 고이치 일본 관방장관은 “방위청에서 발견된 자료를 비롯해 관계자들의 증언과 이미 보도된 미군 등의 자료를 보면 일본군 ‘위안부’의 모집과 위안소의 경영 등에 구 일본군이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생각한다”고 밝혀, 군의 개입을 인정했습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자체 조사를 벌이고, 일본군 관여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인정하는 ‘고노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에 나아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서 위안소가 설치되고, 많은 수의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담당했는데, 이 경우에도 감언ㆍ강압 등에 의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일도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하에서 처참한 것이었다.”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관방 장관

사과를 모르는 일본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일본군이 ‘위안부’ 제도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배상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피해자들의 개별 배상 청구권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1년 8월, 국내 최초로 김학순 할머니(당시 67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대구에서 문옥주 할머니가 두 번째 공개 증언을 했습니다. 1993년부터는 보건복지부가 ‘위안부’ 피해자 등록을 받았는데요. 2015년 말 현재까지 238명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으나, 이 중 46명만이 생존해 있습니다.

국내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에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습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 1993년 일본에 거주하는 송신도 할머니 등이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Focusnews 2015120201132007163 제공=포커스뉴스
2015년 12월 2일. 1207차 수요집회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1210차를 맞은 ‘수요 시위(매주 수요일 낮 12시 정각,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도 마찬가지입니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 이행 등 문제 해결, 그리고 이를 통한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요구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는 집회입니다. ‘수요 시위’의 요구 사항은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등 7가지입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징용 피해자 등이 일본 정부에 제기한 배상 청구 소송이 일본 법원에 의해 각하되는 등 배상 문제에는 진척이 없습니다. 일본 정부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이 일단락됐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 1항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사안으로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았다”는 입장입니다.

일본 정부는 법적인 배상 책임을 부인하고 1995년 인도적 차원에서 ‘아시아 여성기금’을 설립, 일부 피해자들에게 개별 성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금은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용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아베가 걸림돌이다

극우주의 정치인 아베 신조가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해 다시 총리직에 앉았습니다.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을 주장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 사관을 ‘자학 사관’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전에도 배상 문제가 진척된 적은 없지만, 아베 총리의 역사수정주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습니다.

Shinzo Abe

일본군의 ‘위안부’ 피해자 강제동원 부정


아베 총리는 첫 총리 재임 시절인 2007년 3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관헌이 집에 들이닥쳐 사람을 납치하듯이 연행했다는 강제성,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었다”고 말해, ‘위안부’ 피해자의 강제 동원을 부정했습니다.

고노 담화 깎아내리기


고노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군의 직접적 개입과 강제 동원을 인정한 최초의 관방장관 담화입니다. 그러나 2014년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의 작성 경위에 대한 ‘검증’을 진행했는데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해 6월 고노 담화의 검증 결과를 공개하며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고노 담화 중 ‘위안소 설치와 모집에 있어 군의 관여 부분과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 관련 문안이 한국과의 조율 끝에 결정됐다며, 고노 담화를 사실상 ‘정치적 협상의 결과물’로 격하시켰습니다.

전후 70주년 담화 ‘과거형 사죄’


“일본은 지난 전쟁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현해왔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2015년 8월 15일 ‘전후 70주년 담화’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반성과 사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과거형으로 표현해, 진정성이 결여됐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는 인신매매 피해자"


“인신매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워싱턴 포스트 2015년 3월 27일 자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가해자와 피해자, 그 목적과 피해 사실이 불분명한 ‘인신매매’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했습니다. 국제사회에 의해 ‘성 노예(Sex Slavery)’로 규정된 일본군 ‘위안부’의 본질을 흐리고 책임을 비껴가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헛바퀴 도는 한일 '위안부' 협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고 있지 않은 가운데,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단독 국장급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단독 의제로 다루는 당국 간 협의는 처음인데요. 2014년 4월 16일 서울에서 첫 협의를 시작했고, 지난 12월 15일엔 도쿄에서 11번째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협의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 시민단체는 ▲일본의 법적인 책임 인정 ▲사죄 ▲그에 따른 배상 혹은 보상 등 3가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도의적인 책임은 있겠지만, 법적인 책임은 남아있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일본 측은 이번 국장급 협의가 ‘최종 해결’을 보장할 것, 추가로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각에선 일본 정부가 ‘사사에 안’을 일부 보강해 들고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요. ‘사사에 안’이란 2012년 3월 사사에 겐이치로 당시 사무차관이 제시한 방안으로 ▲일본 총리의 사죄 표명 ▲주한 일본대사가 총리의 사죄 편지 전달 ▲일본 정부자금으로 위로금 지급을 포함합니다.

한일 정상회담, 빈 수레인가? 지렛대인가?

2015년 11월 2일, 박근혜 대통령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정상회담이 약 1시간 40분간 진행됐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2012년 5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이후 3년 6개월 만에 열린 회담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습니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양국이 특정 합의를 내놓느냐’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단독 회담을 진행하는 동안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양국은 조속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협의를 가속하겠다는 수준의 합의를 내놓았는데요. 아베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를 표하거나, 반성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 “위안부 문제가 양국관계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미래 지향의 협력 관계를 구축해 가는 데 있어서 미래 세대에 장애물을 남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결국, 일본군 ‘위안부’ 담판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습니다. 양국이 '협의 가속화’라는 결과에 다다랐지만, 이는 '합의를 위한 협의에 합의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이 ‘빈 수레’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이유입니다.

​이에 대한 반박도 존재합니다. 양국이 이번 회담을 통해 확실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3년 이상 끊겨 있던 양국의 외교 관계가 정상화되기 시작했다는데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거죠.

​어찌 됐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협의는 더욱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구체적인 타결안 마련은 기존 외교 채널을 통해 진행될 전망이지만, 조기 타결을 위해 협의 채널의 급을 높이는 등의 조치가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지렛대가 되길 바랍니다.

외교 담판의 신규 쟁점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기시다 외상에게 연내 방한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일본 언론에서 갖가지 추측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 정부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게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규 쟁점 1. 최종 해결 보장 - 한국 정부의 기금 참여


일본 측은 이번 담판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보장받고자 합니다. 앞으로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않겠다는 최종적인 확약을 받아내겠다는 겁니다.

27일 아사히 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이 28일 윤병세 장관에게 새 기금 공동설립 안을 건의하고 합의에 이르면 공동 문서로 발표될 전망”이라며 “위안부 문제의 최종타결을 담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마지막 돌이킬 수 없는 해결’을 목표로, 한국 정부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이라 판단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피해자를 위한 기금에 (피해 당사국인) 우리 정부를 개입시키고, 추후에 ‘딴소리’는 하지 말라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신규 쟁점 2. 최종 해결 보장 - 결판은 미국에서


27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한-일 ‘위안부’ 담판의 결과를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재확인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제3자인 미국을 관여시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인 타결을 국제사회에서 보장받도록 하기 위함으로 풀이됩니다. 구체적으로 내년 3월 31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 안보 정상회의에서 한·미·일정상회담을 갖는 시나리오가 거론됩니다.

신규 쟁점 3. 평화의 소녀상 이전 요구


일본 정부는 그동안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이전해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외교부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소녀상을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요미우리 신문은 26일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이전을 한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8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교섭에 진전이 있으면,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남산 인근에 설치될 추모공원 ‘위안부 기억의 터’로 이전하도록 관련 시민단체를 설득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해당 보도가 국내에 전해지자 외교부는 주일 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언론 플레이 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며,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 측에서 터무니없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어 협상에 임하는 일본의 진정성에 의문이 간다”며 소녀상 이전설을 일축했습니다.

28일 '위안부' 담판의 관전 포인트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교상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담판을 짓는 회담을 합니다. 하루 전인 27일엔 12차 외교 국장급 회담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관련 단체가 요구하는 것은 ▲일본의 법적인 책임 인정 ▲사죄 ▲그에 따른 배상 혹은 보상입니다. 따라서 핵심 쟁점도 이 세 가지에 관련될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 쟁점 1. 법적 책임 인정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큰 쟁점은 일본이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일본에 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법적인 배상 문제가 일단락됐다며 법적 책임의 잔존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핵심 쟁점 2. 사죄의 방식


사죄의 방식 또한 핵심 쟁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아베 총리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기존의 ‘사사에 안’에서 볼 수 있듯이 △총리의 사죄는 ‘편지’로 갈음하고 △주한 일본대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가 대신 사죄하는 등의 비공개 사죄를 주장했습니다.

핵심 쟁점 3. 배상이냐 보상이냐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할 것인지, ‘보상’을 할 것인지, 배·보상금에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배상은 국가의 불법 행위를 전제하고, 보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배상금’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장치입니다.

타결됐으나 끝나진 않은 '위안부' 논의

한국과 일본이 28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그러나 협상 내용을 두고 ‘진일보’냐 ‘후퇴’냐 의견이 분분합니다. 평가가 엇갈려도 협상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번 협상이 ‘불가역적인’ 해결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의 입장


  1.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의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 아베 신조 내각 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현한다.

  2. 요약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10억 엔의 예산을 거출한다.

  3. 요약 이번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되돌릴 수 없는)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 향후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

한국 정부의 입장


  1. 요약 앞서 2항을 전제로 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

  2. 요약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 이전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3. 요약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 비판을 자제한다.

이번 협상에 대한 평가는 분분합니다. 먼저, 일본 정부가 ‘책임 통감’, ‘사죄’, ‘반성’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일보한 시각을 공유했다는 점에 긍정적 평가가 나옵니다.

또한, 연내 타결을 끌어낸 것이 현실적인 이득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 할머니는 46분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시간이 흘러 피해자들이 남아있지 않으면 문제 해결 동력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번 협상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결과에 대해 전부 무시하겠다” “조금도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 없다”

이용수 할머니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정부가 하는 대로 따라가겠다”

유희남 할머니

“사죄도 아니고, 해결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이옥선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도, 24년간 ‘수요 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도 이번 협상 내용에 반발했습니다.

’법적 책임’ 명시 없다
기시다 외상이 대독한 아베 총리의 사죄문은 “책임을 통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3년 전 사사에 안의 ‘도의적인 책임’이라는 표현도, 피해자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법적 책임’도 아닙니다. 강제 동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인정한다는 내용도 없었습니다.

기시다 외상은 기자 브리핑에서 “법적 입장(‘법적 책임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최종 해결됐다’)은 과거와 아무런 변함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지지부진한 협상을 연내에 마무리 짓기 위한 ‘졸속’ 협상이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협상에 진척이 없자 ‘창조적 모호성’ 즉, 각국의 국내 정치에서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협상문에 여지를 놔두는 방안이 떠올랐는데요. 이번 협상에선 그 ‘그레이존(회색 지대)’이 너무 넓었던 게 문제라는 겁니다.

졸속 협상 비판이 일자 박근혜 대통령은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피해자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대독 사과
피해자 할머니들은 아베 총리가 공식적으로 직접 사과하길 원했지만, 사과문은 방한한 기시다 외상이 대독했습니다. 정대협은 “아베 총리가 일본 정부를 대표해 내각 총리로서 직접 사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독 사과’에 그쳤고, 사과의 대상도 너무 모호해서 진정성이 담긴 사죄라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마음의 상처 치유금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부인했으므로, 당연히 기금 10억 엔도 배상금이 아닙니다. 협상문에는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1995년 일본 민간 차원에서 모금한 ‘아시아피해여성기금’을 일본 정부 예산으로 채우는 것과 비슷한데요. 많은 피해자가 일본의 법적 책임 회피를 용인할 수 없다며 기금 수령을 거부한 바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최종’인가
일본 정부가 재단에 기금을 출연하면 우리나라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보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공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기시다 외상은 “한국이 (등록) 신청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녀의 발뒤꿈치는 아직 땅을 딛지 못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이후 첫 수요집회가 열렸습니다. 올해 돌아가신 9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의 추모제로 진행된 집회엔 약 천여 명의 시민(경찰 추산 700명)이 모였습니다.

지난 26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일 교섭에 진전이 있으면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도록 한국 정부가 관련 시민 단체를 설득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외교부는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이므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즉각 반발했는데요.

이틀 뒤인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밝힌 우리 정부의 입장은 “소녀상 이전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였습니다.

협상에서 일본의 ‘법적 책임’이나 ‘배상’ 문제가 배제된 데다가, 소녀상을 이전하도록 우리 정부가 우리나라 시민 단체를 설득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자 반대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국민 5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3%가 소녀상 이전을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4.2%p)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평화의 소녀상’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30일 제1211차 수요집회엔 평소보다 다섯 배 많은 1,000여 명(경찰 추산 700명)이 모였습니다.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 부부도 참석해 소녀상의 작품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더 큰 슬픔을 겪어왔다"

“아픔을 가진 할머니들을 따뜻하게 해드려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하고 내친 부분을 발에 표현한 것”

김운성 작가, 30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김운성. 김서경 작가는 1000번째 수요집회를 맞아 2011년 12월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습니다. 현재까지 국내 24곳, 미국 9곳, 일본 1곳에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Focusnews 2015122801174541916 제공=포커스뉴스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는 동상에 많은 뜻을 담았습니다. 동상은 한복을 입은 13~15세의 조선인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남일보의 2014년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소녀가 고운 댕기 머리가 아니라 거칠게 잘린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이유는 타의에 의해 가족, 조국과 단절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신겨져 있지 않은 맨발은 소녀의 험난한 삶과 여정을 뜻하고, 미처 바닥에 닿지 못한 발뒤꿈치는 고국에 돌아와서도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온 세월을 나타냅니다.

소녀는 입술을 앙다물고, 주먹을 곧게 쥐고, 정면의 주한 일본 대사관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동상은 소녀의 모습이지만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는 할머니의 것입니다. 소녀가 할머니가 되도록 인권과 명예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림자 속 하얀 나비는 환생을 의미합니다.

소녀의 어깨에 앉아 있는 새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상징이고, 소녀 옆 빈 의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 할머니의 자리이자, 할머니의 아픔을 공감해 소녀상을 찾은 시민을 위한 자리입니다.

30일 수요집회에 참석한 이용수 할머니는 “정부 당국이 피해 할머니들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다” “일본과의 협상에 앞서 할머니들에게 어떤 식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지 전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할머니의 발뒤꿈치는 아직도 굳은 땅을 딛지 못한 모양입니다.

조약이냐 신사협정이냐,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지난달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 졸속 협상이라는 비판을 넘어 ‘무효’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협상이 국제법상 조약에 해당한다며,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이번 협상이 조약이 아닌 신사협정에 해당한다면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체크메이트인가요?

“이 합의는 국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조약이나 협약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 합의에 반대하며 국회의 동의가 없었으므로 무효임을 선언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12월 30일 최고위원회

경향신문은 협상 무효 선언 배경에 대해 “정부가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을 맺을 경우 국회가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는다고 명시한 헌법 60조 1항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30일 외교부에 한일 합의문과 양국이 교환한 서한 등 정보 공개를 청구했습니다. 이번 합의가 이행 의무가 있는 국제법상 조약인지, 구속력이 없는 신사협정인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서인데요. 민변 관계자는 “신사협정은 정치적 언약에 불과하다”며 “조약이 아닌 경우 이행 근거에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페이스북 “일본군위안부 합의 어떤 경우라도 야당은 청와대를 압박할 수 있다”

한편 청와대는 12월 31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습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부가 최선을 다한 결과에 대해 ‘무효’와 ‘수용 불가’만 주장한다면 앞으로 어떤 정부도 이런 까다로운 문제에는 손을 놓게 될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번 합의를 이해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 없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국제연합(UN)에 제출했습니다.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위안부’ 피해자 강제 연행에 대한 사실관계 물타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다음 달 15일부터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열리는 제63차 회의를 위해 지난 8월 일본 정부에 여성 인권에 관한 질문서를 보냈는데요. 유엔 인권 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웹사이트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답변한 문서에서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forceful taking away)’은 일본 정부가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자료로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질문 9-1. ‘위안부’ 강제 이송(forcible removal)을 입증하는 증거가 없다는 최근 공식 발언에 대하여

“1990년대 위안부 문제가 일본과 한국의 정치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사실 조사를 실시해왔다. 사실 조사는 (1) 일본 정부의 유관 부처와 기관이 보유한 관련 문서에 대한 연구 및 조사 (2)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문서 검색 (3) 전 군부 측과 위안소 관리자 등 관련자 청취 및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수집한 증언에 대한 분석 등을 포함한다. 이 같은 조사에서 일본 정부가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자료에서도 군과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forceful taking away)’은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 답변

질문 9-2. 일본 정부는 ‘아시아여성기금’에 의해 보상받지 못하는 다른 국가(중국, 동티모르 등)의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해 보상 조치를 취할 의향이 있는가

“일본 정부는 그럴 의향이 없다”

-일본 정부 답변

질문 9-3. 일본 정부는 학교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반영하고 대중에게 주의를 일깨울 의향이 있는가

“일본 정부는 국정 교과서 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으므로, 학교 교육이 다루는 특정 이슈나 내용 묘사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일본 정부 답변

해당 답변서 내용을 미루어 보아, 일본 정부는 다음 달 여성차별철폐위원회 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제 연행의 증거가 없다고 진술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산케이 신문은 일본 정부가 유엔위원회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정한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답변 내용은 지난해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제 이송’에 대한 질문을 ‘강제 연행’으로 빗겨 답변하는 등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총체적 강제성을 물타기 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게다가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상황을 일본 정부가 역이용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우리 외교부는 즉각 반박했습니다. 외교부는 31일 보도자료에서 “일본군 위안부 동원·모집·이송의 강제성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유엔인권위 특별보고관 보고서, 미국 등 다수 국가의 의회 결의 등을 통해 국제 사회가 이미 명확히 판정을 내린 사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과거 고노 담화를 통해 ‘역사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이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서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현 아베 내각도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누차 공언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한일 위안부 합의 비판

지난 7일, 유엔의 여성 인권문제 전문기구 중 하나인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충분하지 않다는 내용의 심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위원회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요. 위원회는 지난 2009년에도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적절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해 12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습니다. 그런데도 위원회가 또다시 보고서를 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되짚은 이유는 한일 정부 간 합의 내용이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 방식을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일본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스기야마 신스케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한일 정부 간 합의 이후에도 “군과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었다”는 발언을 하며 합의를 무색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최종 견해는 위안부 문제는 (한일 정부 간 12.28 합의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합의가 신속히 실행되길 요구한다”

​"지도자나 당국자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가볍게 보는 발언을 해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번 심적 고통을 주고 있다. 위안부 이슈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는 접근은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 방식을 충분히 취하지 않은 것”

이스마트 자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위원

합의 당사자인 한일 양국은 예상치 못한 위원회의 심의 내용 발표에 당황한 모습입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한일) 합의는 피해자와 피해자 단체들 의견 수렴을 통해 도출됐다. 12월 28일 합의가 충실히, 성실히 이행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유엔 발표는 한일 간 합의를 비판하는 등 일본 정부의 설명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것이어서 매우 유감이다. 받아들일 수 없다. 양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성실히 실행에 옮겨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난감한 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반 총장은 한일 합의 당시 양국의 합의를 환영하는 성명을 냈는데요. 과거의 그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이번 위원회 측의 보고서는 반 총장의 입장과 배치됩니다. 이에 대해 스티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위원회는 의견을 냈고, 반 총장은 자신의 견해를 밝혔을 뿐”이라며 “이번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독립적인 의견”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