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버킷리스트

Forsaken Fotos, flickr (CC BY)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인가?

뉴욕타임스의 <The Moral Bucket List>를 번역한 글입니다.


한 달 전쯤 자신 내부의 빛으로 환히 빛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살다가 한번씩 만나지요. 이들은 진심으로 선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죠. 당신이 재미있고,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줍니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돌볼 때면 웃음소리는 노랫소리 같고 감사로운 마음이 넘쳐납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죠. 아니, 자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제 하루가 빛나고 가치 있는 하루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편 씁쓸해진다는 것도 인정해야겠습니다. 저는 일적으로는 제법 성공했으나, 인간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새삼 떠오르는 겁니다. 그런 자비로운 영혼에도, 그런 깊이있는 인간미에도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제가 그렇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내 영혼을 구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것도요. 이제부터 영혼의 순례를 시작해 그런 선함을 발산하는 사람이 될 참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균형을 바로잡을 예정이었죠.

세상에는 이력서 덕목과 추도사 덕목, 두가지 종류의 덕목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력서 덕목은 당신이 구직시장에서 빛나게 해주는 업무 능력이지요. 추도사 덕목은 당신의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거론할 것들입니다. 친절하고, 용감하고, 정직하며 믿음직한 친구였다는 식이지요. 당신은 깊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요?

우리 모두 추도사 덕목이 이력서 덕목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와 교육 과정은 일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술과 전략을 가르치기에 바빠 영혼을 빛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는 충분히 논의하지 않죠. 우리 대부분이 인성을 키우는 방법보다 일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더 잘 알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외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다보면 가장 깊은 곳의 당신은 내버려두게 됩니다. 도덕의 언어는 잊게 되죠. 스스로 만족하면서 보통 수준에서 타협해버리기 쉽습니다. '이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죠. 눈에 띄게 잘못한 게 아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이상 이 정도면 된거죠. 그러나 그렇게 살다 보면 당신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인생의 의미나 기쁨을 잊고 지루하게 살고 있을 겁니다. 당신이 원하던 당신과 실제의 당신, 가끔씩 만나게 되는 그 빛나는 사람들과 당신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기만 할 뿐 입니다.

그래서 몇년전 저는 그렇게 빛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인품을 가지게 되었는지 밝혀보기로 마음먹었죠. 실제보다 똑똑한 척 하는 식자층에 불과한 제가 그런 인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길을 밟아야 되는지는 알고 싶었습니다.

연구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 대단한 사람들은 타고난 게 아니라 만들어진거 라는 겁니다.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은 도덕적인 영혼의 성취를 조금씩 천천히 달성하면서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내부의 진짜 인품을 지어올린 겁니다.

허울 좋게 이 단계를 내 영혼의 버킷리스트라고 부르려합니다.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이루었던 경험들을 저도 하나씩 이루어보려는 겁니다. 여기, 그 몇 가지가 있습니다.

겸손해지기


우리는 ‘대단한 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최근의 실력주의는 자기 홍보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죠. SNS는 당신 인생의 최고봉을 부풀려 자랑하게 부추깁니다. 당신 부모님과 선생님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늘 이야기하곤 했지요.

그러나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게 이기적인 마음이던, 인정받으려는 욕구이던, 소심하고 냉담하고 무정한 마음이던 간에요. 그들은 이러한 약점이 어떻게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을 자초하는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중심에 놓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중심에 놓고 자신을 위치를 파악하면서 진심으로 겸손해 질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승리


외부적인 성공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얻습니다. 그러나 인성은 자기 자신의 약점을 마주 대할 때 키워지는 겁니다. 드와인 아이젠하워는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게 본인의 약점인 것을 일찌기 깨달았다고 했죠. 다른 이들을 리드하기 위해 낙관주의와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쾌활하고 사교적인 척 했지만, 속으로 화를 다스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가 날때면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종이에 적은 후 마구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곤 했습니다. 본인의 원죄를 마주하고 다스리려 평생을 노력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가 가장 약한 부분이 드러나올 상황에서도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의존에서 벗어나기


졸업할 때 흔히 주는 선물 중에 닥터 수스의 ‘오, 네가 갈 그곳들!” (oh, the Places You’ll go!)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삶이 자율적인 여행이라고 묘사합니다. 우리는 무언가 달성하려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다른 모험을 하죠. 이 개인주의적인 관점은 우리가 강한 의지를 가진 강철과 같은 사람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길에서 어느 누구도 혼자 이 모든 것을 달성하지는 못합니다. 개인의 의지, 동기, 감정은 스스로를 뛰어넘을 만큼 강하지 못하고, 우리는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주위의 도움을 인지한 사람은 인생을 꾸준히 다른 약속과 책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으로 봅니다. 인성은 당신히 단단히 자리잡고 있나에 따라 결정나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극복할 만큼 깊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있었나요? 지성의 세계에서, 인품이 훌륭한 사람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자신의 철학을 구축한 사람입니다. 감성의 세계에서는 끝없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죠. 행동의 세계에서는 몇세대에 걸친 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힘을 주는 사랑


도로시 데이가 젊을 때 그녀의 인생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술을 진탕 마시고 흥청거렸고, 자살을 시도했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가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딸이 태어나면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책을 쓰거나, 가장 훌륭한 음악을 작곡하거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거나, 가장 아름다운 조각작품을 창조해내더라도 내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면서 내가 이보다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햇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자신을 바꿉니다.

진짜 당신은 다른 사람 안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죠. 이런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를 진정한 기쁨으로 바꾸어놉니다. “어떤 인간 존재도 제가 아이를 낳은 후 느끼는 밀려온 태풍같은 사랑과 기쁨을 느끼지 못햇을 거에요. 사랑하고 섬기고 싶어졌죠.” 그녀는 사방으로 뻗어나갔습니다. 카톨릭이 되었고, 급진적인 신문 발행을 시작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을 열고, 빈곤한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사랑은 항상 자기 중심적인 우리를 바꾸어놓기도 합니다.

소명 속의 소명


우리는 돈, 사회적 위치, 안정을 위해 직업을 찾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직업을 소명으로 바꾸어나갑니다. 이러한 경험은 참 대단하겠죠. 더 좋은 삶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곧 자신의 일이 되는 겁니다.

프란세스 퍼킨스(Frances Perkins) 는 20세기 초 행동주의자였습니다. 그녀는 예의바르고 점잔빼는 좀 따분한 상류층의 보통 아가씨였죠.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트라이앵글 의류 공장 화재에서 수십명 노동자들이 불에 타 죽기보다 불에 타 죽느니 몸을 던져 죽는 걸 목격한 이후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이 경험은 도덕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녀 삶에 소명이 생겼죠.

그 이후로 인생을 노동자 권익에 바쳤습니다. 누구와도 일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누구와도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망설이지 않고 밀어붙였습니다. 운동에 더 효과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 외모까지 바꾸었습니다. 그녀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내각에서 미국 역사상 첫번째 여성 위원이 되엇고, 20세기 시민 운동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사회적 의무를 벗어던지기


인생에는 자신의 사회적 명성이나 위치, 학연, 지연 등에서 완전히 벗어날 기회가 찾아오곤 합니다. 실리에 맞는 행동을 하지않고 두려움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도 있지요.

소설가 조지 엘리엇 (진짜 이름은 메리 앤 에반스였습니다)는 감정적으로 불안하고 만나는 남자마다 사랑에 빠져 쫓아다니다 거절 당하는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조지 로이스라는 사람을 만나죠. 그는 아내와 별거 중이었지만 법적으로는 결혼한 남자였습니다. 계속 그를 만나면 사회에서 상간녀로 낙인 찍힐 상황이었죠. 친구를 잃고, 가족에게 절연 당할 상황에서 그녀는 일주일을 고민하고 계속 그를 만났습니다.

“가볍고 쉽게 끊어질 사회적 끈은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내삶을 바칠 대상은 더욱 아니다. 그런 사회적 고리에 행복한 여성은 나같이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현명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녀는 조금씩 안정되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이가 생겼죠. 그녀와 로이스의 사랑은 나이들고, 상처받고, 책임감에 옭아매던 사람들이 그 후에 찾는 안정적이고 헌신적인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그녀의 불안한 성격은 조금씩 안정되어갔습니다.

졸업식 연사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열정을 쫓아가고 진실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삶은 자신에서 시작해 자신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빛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만 묻는 게 아닙니다. 삶이 내게 원하는 게 뭐지? 내 능력을 세상이 필요한 데에 쓰고 있나?


출처 : 뉴스페퍼민트 <내 영혼의 버킷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