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계획경제의 실패와 쿠바의 지하경제

Guillaume Bavière, flickr (CC BY)

의사보다 택시 운전기사가 더 많은 돈을 버는 나라

복스의 <Why Cuban cab drivers earn more than doctors>를 번역한 글입니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라파(Rafa)는 하루에 못해도 60달러 정도를 법니다. 쿠바 의사의 평균 월급이 45달러 정도인 걸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차이입니다. 사실 라파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처음부터 택시를 운전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엔지니어의 벌이는 의사보다도 더 나쁩니다. 그래서 라파는 현재 직업에 무척 만족합니다. 하루 택시를 운전해서 의사의 한 달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나라가 쿠바 말고 또 있을까요? 이런 현상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지하 경제, 그리고 국가가 제한적으로 허용한 시장 경제의 불균형과 병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34살 아르만도(Armando)는 아바나에서는 부유층에 속합니다. 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는 쿠바에서 유산으로 물려받은 돈이 있을 리 없습니다. 아르만도는 지난 15년 동안 택시 기사로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부로부터 차량을 임대해 택시 영업을 하다가 가족으로부터 돈을 빌려 정부로부터 개인택시 영업증을 받은 노란 택시 한 대를 장만한 뒤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아르만도는 말합니다.

“하루에 정부에 세금으로 내야 하는 돈이 20달러예요. 작은 돈이 아니긴 하지만 20달러만 내면 나머지 수입은 전부 다 제 겁니다.”

아바나 공항과 시내를 오가는 외국인 관광객 손님 한 명으로부터 받는 요금이 보통 20~25달러입니다. 아르만도는 한 달 동안 보통 1,500달러를 법니다. 의사가 버는 돈의 30배가 넘는 큰 돈입니다.

“지금 삶에 충분히 만족해요. 떠날 이유가 없어요.”

Cuba havana Jaume Escofet, flickr (CC BY)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내 전경

아르만도는 쿠바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현재 자신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전부 다 미국 마이애미로 이민을 갔지만, 그는 벌이도 괜찮고 멕시코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며 쿠바에 계속 살 거라고 말했습니다.

아르만도는 지금 쿠바에서 가장 많은 돈이 몰리는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덕에 큰 돈을 벌게 됐습니다. 쿠바 정부는 얼마 전부터 외화벌이 수단으로, 또한 쿠바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선전 수단으로 관광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바나 구시가지의 낡은 건물들은 개보수를 마쳤고, 아바나 시내 곳곳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쿠바의 공식 물가를 감안하면 택시 요금은 말도 안 되게 비싼 셈이지만, 관광객들은 대개 그 정도 돈을 낼 용의가 있고, 이는 아르만도에게도 쿠바 정부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Cuba havana2 Bryan Ledgard, flickr (CC BY)

1959년 친미 독재정권이었던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내고 사회주의 쿠바를 선포한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가 처음 한 일은 토지를 비롯한 모든 경제 부문의 재산을 국유화한 것이었습니다. 민간부문 경제(private sector)는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정부는 시장의 가격, 재고, 임금을 비롯한 모든 수치를 계획에 따라 정했습니다. 국민들이 필요한 생필품과 각종 물자는 배급 제도를 통해 분배됐습니다.

계획 경제가 개인의 동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실패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쿠바에서는 여전히 실패한 계획 경제의 폐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바나에 있는 국영 상점에서는 맛있는 쿠바 음식을 접할 수 없습니다. 있는 거라곤 빵 사이에 햄을 끼워넣은 햄 샌드위치가 전부입니다. 어느 가게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열장은 대체로 텅 비어있고, 한 명이면 충분할 것 같은 가게 점원은 3~4명인데, 이들은 대부분 일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물건을 많이 팔든 하나도 못 팔든 정부로부터 받는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는 똑같으니 점원들은 그저 주어진 근무 시간 8시간만 채우고 집에 갈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냉전 시대 소련으로부터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던 쿠바 경제는 소련의 붕괴와 함께 악화 일로를 걸었습니다. 쿠바 가정에 하나씩 있는 배급표를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1992년과 올해 정부로부터 받은 배급품 목록과 양을 각각 비교해보면, 쿠바 정부가 그 때보다 지금 훨씬 더 가난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계획 경제의 실패를 눈 앞에서 목도한 쿠바 정부는 1990년대 들어 민간 부문 경제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영 상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먹을거리, 점원들의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삶의 활기를 체험하고 싶으면 민간 레스토랑, 민간 시장에 가야 합니다. 음식이 맛이 없고 서비스가 안 좋으면 식당에 파리만 날릴 테고, 그럼 돈을 못 번다는 사실을 아는 주인과 점원들은 친절한 얼굴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옵니다. 민간 부문 경제를 허용한다는 뜻은 가격이나 급여를 정부가 결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Cuba havana3 helenedancer, flickr (CC BY)

계획 경제와 민간 경제 사이의 불균형은 거대한 지하 경제를 낳았습니다. 또 다른 큰 문제는 능력 있는 전문 인력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즉, 의사나 기술자, 교사 등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가려면 민간 부문에서 자신의 기술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글의 처음에 언급한 택시기사 라파도 원래 엔지니어지만 택시가 돈벌이가 훨씬 좋으니 엔지니어 일을 찾을 생각이 전혀 없고,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생계가 막막해 이발소를 차린 사람, 회계사 자격증이 있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어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부업을 얻어야 합니다. 공식 직업을 통한 벌이로는 입에 풀칠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암시장 또는 지하 경제 규모는 나날이 커졌습니다. 한 쿠바 시민은 말합니다.

“아침에 일하러 가는 길에 노점에서 신문 한 부 사는 것이 그 날 제가 저지르는 첫 번째 범죄일 겁니다. 정부로부터 허가받지 않은 채 물건을 파는 건 불법이니까요.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

2008년 피델로부터 권좌를 넘겨받은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이후 지하 경제의 현실을 직시하고 각종 민간 부문의 영업 자격증을 더 많이 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더디기만 합니다.

아르만도는 계속 앉아서 운전만 했더니 신장이 좋지 않아 다음날 병원에 갈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병원에 꼭 들고 가야 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주 좋은 양주 한 병을 외투 안에 들고 가서 의사를 처음 볼 때 슬쩍 그걸 보여줘야 해요. 조그마한 선물(regalito) 없이 빈손으로 가면 의사는 아마도 그날 손님들 다 받고 나서 제일 마지막에 기분이 내키면 저를 진찰해줄 겁니다. 의사들 공식 월급을 생각하면 당연해요. 저라도 그럴 걸요. 쿠바에선 이렇게 해야 돼요. 이게 쿠바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