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

Hernán Piñera, flickr (CC BY)

바빠 ‘보이기’ 위해 경쟁하는 삶

워싱턴포스트의 <Why being too busy makes us feel so good>를 번역한 글입니다.

남들보다 바빠져야만 하는 세상


20세기가 끝날 즈음, “바쁨(busyness)”은 삶의 훈장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일상은 마라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너무나 바빠서 투표를 할 시간도, 데이트를 할 시간도, 사무실 바깥에서 친구를 사귀거나 휴가를 가거나 잠을 자거나 섹스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2012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3천 8백만 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멀티태스킹의 일환(!)으로 변기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에 대한 강박은 우리를 돌처럼 멍청하게 만든다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바빠 ‘보이기’ 위해 경쟁합니다. “바쁠수록 중요한 사람이 됩니다. 충만하고 가치있는 삶을 영위한다는 얘기죠.” 노스다코타 주립대의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인 버넷은 말합니다. 지금까지 주변의 남들을 이기는 기준은 더 많은 돈, 차, 집이었습니다. 이제는 남들보다 바빠져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놀고 있으면 울적해지며, 바빠질수록 행복해진다”


가장 게으를 때 가장 창의적이 된다는 사실을 신경과학이 밝혀냈음에도 (그리고 위대한 예술과 철학과 발명은 모두 여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휴식에 저항합니다. 심리상담사들은 더 바쁠수록, 더 빨리 일할수록, 더 멀티태스킹에 능할수록, 보다 유능하고 똑똑하고 성공적이라는 통념을 깨버리지 못한 탓에 완전히 지치고 방전이 되어버린 번아웃(burnout) 환자들을 상담합니다. 이 통념은 이제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나 다름없습니다.

중세엔 이런 식의 미친 듯한 “분주함(acedia)”이 가톨릭의 일곱 가지 원죄 가운데 하나로 취급받았으나, 오늘날엔 바쁘다는 게 너무나도 가치로워진 나머지 행복의 원천이 된다고 시카고 대학의 행동과학자 크리스토퍼 시는 말합니다. 2010년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그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놀고 있으면 울적해지며, 바빠질수록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나아졌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예전 사람들이 상상한 21세기의 삶은 이처럼 정신없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그의 1930년 기고에서, 2030년 경엔 일주일에 15시간 정도만 일하게 될 것이며 모두가 값지고 즐겁게 보낼 만한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갖게 되리라 예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생산성이 증가하고 사람들의 수입이 늘어나고 삶의 질이 높아지자, 경제학자 및 정치가들은 1990년에 이르면 미국인들은 주당 22시간(1년의 약 절반 정도)만을 일할 것이며 40세 이전에 은퇴하리라 예측했습니다.

그 시절엔, 부유한 엘리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충분한 여가 시간을 갖게 된다는 발상은 급진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귀족들을 괴롭히던 권태가 모두를 괴롭히는 저주가 되리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를 위한 여가 시간”이란 발상은 미국 노동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1923년 말 철강공장의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2시간씩 일했지만 이제 상황은 그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것처럼 보입니다. 자, 그럼 실상은 어떻죠?

첫째, 더 이상 수입이 생활비를 쫓아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학등록금은 1978년에서 2012년 사이 1,120%나 증가했습니다. 카이저 가족재단에 따르면 2002~2012년 프리미엄 건강보험료는 97%나 증가했으나, 미국 국내 총생산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들었습니다. 1975년까지 수입은 국내총생산의 50%를 차지했으나, 2012년엔 43.5%로 감소했습니다.

둘째, 기계적인 일자리가 줄어들고 ‘창의적’인 일은 증가했습니다. 뉴욕 대학의 사회학자 달튼 콘리는 오늘날의 예술, 기술, 공학, 과학 등의 지식경제 전문직이야말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이상적인 ‘여가’로 추구했던 것이라 말합니다. 그것도 물론 어느 정도 사실이겠지만, 1970~80년대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이들의 노동시간이 늘어난 것은 고용이 불안정해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1938년의 공정노동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은 노동자를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이상으로 비정규직 시간제 노동자를 양산했습니다. 거칠게 말해, 미국의 법은 전문적인 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초과 수당을 주거나 노동시간을 분담할 만한 인력을 고용하지 않아도 될 여지를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생존의 문제 앞에 우리에게는 딱히, 온 시간을 쏟아부어 매달려야 하는 ‘일’에 보다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일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었고, ‘나는 누구이며’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입니다.” 몇 안 되는 여가학자인 벤 훈니컷은 말합니다. “여가는 이제 쇼핑과 가십에 할애할 시간이 남아도는 멍청한 여자 애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죠.”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나약하다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버넷의 연구에 참여하는 한 남자는 투잡을 뛰며 장애아 둘을 돌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카누를 타러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이 남자는 말합니다. “여가를 보낸다는 생각만 해도 그냥 가끔… 무언가 잘못하는 기분이 들어요."